메이저리그베이스볼(MLB), 내셔널지오그래픽, 코닥(사진), 디스커버리…. 모두 패션과 관계가 없던 상표다. 하지만 요즘엔 패션 브랜드로 폭풍 성장 중이다. F&F 등 한국 기업들이 변신을 가능케 한 주역이다. 한류를 타고 중국,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인기를 끌면서 글로벌 패션업계에서도 이 같은 독특한 협업 모델에 주목하고 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중국 MLB의 올 1분기 매출은 495억원으로 작년 동기와 비교해 785% 증가했다”며 “큰 로고에 화려한 디자인으로 중국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MLB는 국내에선 사라지기 일보 직전까지 몰린 실패한 브랜드였다”며 “한류 붐을 타면서 중국 매출 4조원을 바라볼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어패럴을 선보인 더네이쳐홀딩스도 이 같은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최근 홍콩에 해외 매장 4호점 열었다. 중국 시장을 겨냥한 교두보 확보 차원이라는 게 중론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2019년 대만, 홍콩을 시작으로 지난해에는 유럽, 북미에 진출했다. 지난달 골프용품업체 테일러메이드 인수전에도 뛰어들었다. 타이틀리스트 어패럴처럼 골프 용품에서 의류 브랜드를 ‘스핀오프(파생)’하려는 포석이다.
코닥어패럴은 하이라이트브랜즈라는 패션업체가 만든 브랜드다. 미국의 카메라필름 제조업체인 코닥은 2012년 파산했다. 하지만 하이라이트브랜즈는 브랜드 가치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점을 눈여겨보고 2019년 코닥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코닥어패럴은 론칭 1년 만인 지난해 매출 100억원을 달성했다. 국내 매장을 62개로 늘리는 등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올해 안에 매장 80개를 열고 매출 600억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복고 열풍으로 1990~2000년대 리바이스, 랭글러와 함께 3대 청바지 브랜드로 인기를 끌었던 Lee도 배럴즈라는 국내 패션업체의 손을 거쳐 다시 등장했다. 가수 서태지와 아이들이 입어 소비자의 관심을 끈 브랜드인 스톰런던도 20년 만인 올 4월 SJ트렌드에서 새로 선보였다.
K라이선스 브랜드가 늘어나는 원인으로는 ‘가성비’가 꼽힌다.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 초기에 광고나 마케팅 비용을 들이지 않고 시장에 빠르게 침투할 수 있다. 절감한 마케팅 비용은 의류 생산 등 제조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선순환만 이뤄지면 엄청난 폭발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게 패션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상장사인 F&F는 매출 대부분이 MLB와 디스커버리 두 개 브랜드에서 나온다. 2018년 스트래치엔젤스라는 자체 브랜드를 론칭했지만 성장세가 느리고, 같은 해 인수한 패딩 브랜드 듀베티카는 적자를 보고 있다. 최근에는 라이선스 기업이 우후죽순으로 나와 피로감을 느끼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사탕 업체인 츄파춥스 옷부터 대한제분의 곰표 패딩까지 쏟아져 나오면서 소비자들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전주언 안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브랜드 간 아이덴티티가 맞지 않고 이미지에 일관성이 없으면 좋은 브랜드라도 확장성을 갖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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