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조합으로 '파괴적 혁신'…이건희·잡스에게 영감을 주다

입력 2021-07-08 18:38   수정 2021-07-08 23:16

올 상반기 미술계는 ‘이건희 컬렉션’으로 뜨겁게 달아 올랐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소장하고 있던 국내외 명작들이 대중에 공개되며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그중에서도 현대 미술의 거장이자 입체주의 대표 화가인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은 단연 화제였다. 피카소의 회화 ‘도라 마르의 초상’과 도자기 다수가 포함된 것이 알려지면서 세계 이목이 집중됐다. 특히 ‘도라 마르의 초상’은 피카소의 많은 연인 시리즈 중에서도 가치가 높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회장뿐만 아니다. 전 세계의 많은 기업인이 피카소와 그의 작품을 사랑한다. 미국의 대형 헤지펀드인 SAC캐피털 어드바이저스 회장이자 뉴욕 메츠 구단주인 스티브 코헨은 2013년 피카소의 작품 ‘꿈’을 1억5500만달러(약 1757억원)에 구매해 화제가 됐다. 애플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는 임직원 앞에서 피카소의 말을 자주 인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유능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세상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접하고 융합해 위대한 제품을 창조하라는 의미다. 피카소의 뛰어난 창조성과 상상력은 오늘날까지 많은 기업인에게 혁신의 방향과 길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발견한다”…직관과 조합의 힘

스페인에서 태어난 피카소는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미술 교사이자 미술관 큐레이터였던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12세 되던 해, 붓을 놓기로 결심했다. 자신을 능가하는 아들의 실력에 감탄하며 그의 교육에만 전념하기로 한 것이다. 그는 뛰어난 실력에도 자만하지 않고 평생 어린아이의 시선을 간직하려 노력했다. 피카소는 “모든 아이는 예술가다. 다만 문제는 그들이 성장하면서도 여전히 예술가로 남아 있는가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 직관은 인위적으로 새로운 것을 찾고 꾸미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는 평소 “나는 찾지 않는다. 발견한다”고 강조했다. ‘황소머리’란 작품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자전거 안장과 손잡이로 만들어졌다. 그는 그저 고물상에서 고물 자전거를 보며, 평소 즐겨 보던 투우 경기를 떠올렸을 뿐이었다. 자전거와 소, 기존의 평범한 두 요소를 연결해 조합하고 보니 색다른 결과물이 탄생하게 됐다.


자신의 화풍도 해체하는 혁신의 길

경영학에서 흔히 말하는 ‘파괴적 혁신’도 피카소가 앞서 실천하고 있었다. 그는 “창조의 모든 행위는 파괴에서 비롯된다”며 가까스로 만들어낸 자신만의 화풍을 과감히 바꿨다. 그래서 피카소 작품들은 하층민의 삶을 초록과 검푸른 색으로 그린 ‘청색 시대’, 곡예사와 광대 등을 분홍빛으로 그린 ‘장밋빛 시대’, 아프리카 미술에 빠진 ‘흑색 시대’로 나뉜다. 그리고 마침내 원근법, 명암법까지 무너뜨리고 ‘입체주의 시대’의 문을 열었다.


92세에 생을 마감한 피카소는 죽기 12시간 전까지 그림을 그렸다. 그는 평생에 걸쳐 5만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기업인들이 사랑하는 피카소의 모습엔 예술가로서, 또 인간으로서 한계를 뛰어넘으려 했던 이 불굴의 투지까지 포함된 것이 아닐까.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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