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뛸라…1기 신도시 리모델링 활성화 '무산'

입력 2021-07-09 17:35   수정 2021-07-15 16:38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 방안 중 하나로 검토해온 ‘1기 신도시 리모델링 활성화 사업’을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가뜩이나 집값이 불안한 상황에서 자칫 신도시 부동산 가격만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져서다. 정부 차원에서 1기 신도시에 대한 체계적인 정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불난 집에 기름 부을라…‘활성화’ 철회
9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민주당 국토교통부 등이 참여한 당정 공급대책 태스크포스(TF)는 부동산시장 안정 대책으로 검토됐던 ‘1기 신도시 리모델링 활성화’ 방안을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TF에 앞서 꾸려졌던 민주당 부동산특별위원회가 공급 활성화 대책으로 제시한 안이지만 최종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리모델링은 내력벽 철거문제 등 여러 가지 해결 과제가 있다”며 “빠른 시일 내 공급으로 이어지는 데 한계가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수도권 1기 신도시는 △성남 분당 △고양 일산 △군포 산본 △부천 중동 △안양 평촌 등 다섯 곳이다. 2026년까지 이곳에서 재건축 연한(30년)을 충족한 아파트는 28만 가구에 달한다. 1기 신도시 단지는 대부분 용적률이 200% 이상으로 높아 재건축보다는 리모델링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힌다. 1기 신도시에선 지난 5월 말 기준 15개 단지, 1만850여 가구가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다. 리모델링을 하면 법정 기준 가구 수 대비 최대 15% 증가가 가능하다.

당정은 공급효과가 확실하지 않은 데다 자칫 집값만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모델링 활성화’ 방침이 시장에 호재로 받아들여져 호가 상승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집값은 넘치는 유동성에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등 교통호재로 과열 상태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경기도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지난해 6월부터 지난달까지 1년간 33.7% 올랐다. 특히 일산신도시가 있는 고양시의 경우 아파트의 3.3㎡당 평균매매가격이 지난해 6월 대비 45.6% 상승(1353만원→1970만원)하며 수도권에서 가장 높은 상승세를 기록했다. 성남시 분당도 32.7% 오르는 등 과열 조짐이다.
“정부 차원에서 청사진 제시해야”
집값 상승에 대한 부담이 커지면서 1기 신도시 노후주택 재정비도 탄력을 받긴 어려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금도 지방자치단체별로 재정비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법률상 미비점이 많아 리모델링 사업이 지연되는 곳이 많다.

가구 수를 늘릴 수 있어 사업성이 높다고 평가받는 수직증축의 경우 심의 지연과 안전성 문제로 발목이 잡혔다. 2014년 이 제도가 허용된 이후 전국에서 수직증축으로 리모델링 사업계획 승인을 받은 곳은 서울 송파구 송파동 성지아파트가 유일하다. 리모델링 사업의 핵심으로 꼽히는 가구 사이 내력벽(아파트 무게를 지탱하는 벽)의 철거 허용에 대한 결정도 내려지지 않았다.

사안에 따라 여러 법을 적용받는 것도 문제다. 수직증축 리모델링의 경우 사업 절차엔 ‘주택법’이 적용되고 용적률 상한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국계법)’, 건축 기준은 ‘건축법’을 따른다. 이동훈 한국리모델링협회 정책법규위원장은 “리모델링은 기존 건축물의 성능을 회복시키는 것이지만 정비사업이나 신축공사에 준하는 규제를 받으면서 과도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1기 신도시 첫 리모델링 사례로 꼽히는 분당 한솔마을 5단지는 2009년에 조합이 설립된 이후 사업계획 승인까지 14년이 걸렸다.

시장에선 1기 신도시 전체에 대한 체계적인 정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1기 신도시는 공급 확대라는 정책적 목표를 기준으로 계획된 주거타운”이라며 “향후 노후화된 단지를 재정비할 때도 단지별로 국지적으로 진행할 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청사진을 제시해 체계적으로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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