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말 여당이 청와대와 거리를 두거나 반기를 드는 것은 5년 단임제의 숙명이다. 역대 정권 모두 겪은 공통적 현상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이 본격 레이스에 들어가면서 여당 지도부와 주자들 사이에서 청와대를 겨냥한 발언들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부동산 등 현 정부의 정책 실패가 두드러진 분야에서 청와대와 차별화에 나섰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지고 4·7 재·보선으로 꺾어진 민심이 돌아오지 않자 주자들 사이에선 ‘문’자도 나오지 않는 것은 물론 비판적 발언들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4월 총선 때만 해도 의원들이 앞다퉈 ‘문재인 마케팅’에 나섰던 것과는 뚜렷하게 차이가 난다.
송영길 대표부터 총대를 멘 양상이다. 대표 취임 직후인 지난 5월 대통령 면전에서 “모든 정책에 당의 의견이 많이 반영될 필요가 있다”고 한 데 이어 현 정부의 금기로 여겨졌던 종합부동산세 부담 완화안을 꺼내 친문(친문재인) 진영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온 검찰 개혁에 대해서도 속도 조절론을 제기해 친문계와 부딪쳤다. 최근엔 김기표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이 투기 의혹으로 물러난데 대해 “54억원이 넘는 돈을 대출해 부동산을 산 사람을 임명한 것을 보면 선의로 안이하게 봐주는 검증이 되지 않았나 싶다”고 비판했다. 특히 “이너서클(내부 핵심)이니 그냥 봐주고 넘어가선 안 된다”고 청와대에 직격탄을 날렸다. 강성 친문을 일컫는 ‘대깨문’을 언급하며 “대통령을 지키겠다며 떠드는 사람들이 ‘누구는 되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대통령을 지킬 수 없게 된다”고 했다. 인사 검증 부실에 대해선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등 일부 대선 주자도 비판에 동참했다.
송 대표와 여당 대선 주자들이 현 정권과 차별화하려는 중심에는 부동산 정책이 있다. 송 대표부터 “세금을 징벌적 수단으로 활용하고 집을 가진 것을 죄악시하는 태도는 좋지 않다”며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안이하게 대응했다고 질타했다.
하지만 이들의 이런 시각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특히 정 전 총리와 이 전 대표 모두 현 정권 총리를 지내 정책 실패에 대한 공동 책임을 져야 하는데 마치 자신들은 관련없는 듯 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스스로 반성부터 하는 게 정상 아니냐는 것이다.
더욱이 주목되는 것은 이들이 내놓는 부동산 대책이 실패로 판명 난 현 정부의 규제보다 더 강도가 세다는 점이다. 강력한 정부 주도, 세 폭탄 투하 등 더 센 규제로 집값을 잡겠다는 것이다. 토지공개념 도입을 위한 개헌까지 꺼내 들었다. 경제 정책을 이념에 바탕을 둔 가진자-못 가진자 간 갈라치기 전략으로 활용하는 또 다른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민간 자율성을 떨어뜨려 시장이 원하는 공급을 오히려 줄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부동산 규제 완화로 방향을 튼 당 지도부와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
이재명 지사는 주택관리매입공사(가칭) 설치, 국토보유세 부과 등을 주장하고 있다. 이 지사는 “일하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다는 불로소득에 대한 믿음이 국가의 영속성을 위협하고 있다”며 “부동산 시장 통제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국민의 삶이 악화할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주택관리매입공사는 집값이 내려가면 국가가 집을 사들여 공공 임대 주택으로 공급하고 폭등 땐 매입 주택을 시장에 내놔 집값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개입해 집값을 인위적으로 통제하겠다는 것으로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집 매입과 매도 타이밍을 잡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민간 건설 회사의 공급을 막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는 국토보유세와 관련해 “다주택 보유자에겐 심하게 손실이 날 수 있게 세 부담을 강화할 것”이라며 “투기 부동산에는 세금 폭탄을 넘어 징벌적 과세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측근은 “현 정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세 부담을 강화하는 방안을 짜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거둔 세금을 기본 소득의 재원으로 활용하자는 것이 이 지사의 구상이다.
이낙연 전 대표는 토지공개념을 담은 개헌론을 꺼냈다. 그는 지난 7월 5일 출마 선언을 하며 “생명권·안전권·주거권을 헌법에 신설해야 한다”며 “토지공개념이 명확해져 불로소득을 부자들이 독점하지 못하게 막아야 하고 땅에서 얻은 이익을 좀 더 나누고 사회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으로 택지소유상한법·개발이익환수법·종합부동산세법 등 이른바 ‘토지공개념 3법’을 발의했다.
이 전 대표가 토지공개념을 내세운 취지로 토지에서 비롯되는 불공정·불평등을 개선하고 국가가 주거 복지를 책임져 서민 주거 문제를 해소하고 중산층을 두텁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발상 자체가 헌법에 규정된 사유재산제를 뿌리부터 흔든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시장 경제 체제를 도입하고 있는 나라 중 헌법에 토지공개념을 반영한 나라는 없다.
개발이익환수법엔 개발 이익 환수 부담률을 최저 100분의 20에서 100분의 50까지 끌어올리는 내용도 있다. 개인 재산권까지 제도적으로 통제하자는 것으로, 시장 경제에 정면으로 반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이런 법안들은 극히 예외적이고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보호받아야 할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지적도 받는다.
그렇지 않아도 시장을 압박하는 온갖 부동산 규제가 집값 폭등을 불러온 마당에 자칫 국민 분열을 불러올 수 있는 토지공개념과 관련 법안을 추진하는 배경이 주목된다. 이 전 대표 측은 “토지를 매개로 한 소득 격차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어 충격 요법이라도 쓸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하지만 대선 전략상 여권 지지층을 의식해 부자-서민 대결 프레임을 작동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그러나 대표적 희소 자원인 토지를 시장 자율에 의하지 않고 국가가 개입해 규제 일변도의 정책을 편다면 건설업을 위축시키고 공급 부족을 불러 오히려 집값 상승을 부채질하는 역효과 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홍영식 논설위원 겸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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