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의 마술사 니콜라 테슬라가 다시 태어났다." (블룸버그)
1943년 87세를 일기로 사망한 전기공학자 니콜라 테슬라는 생전에 교류 전기 시스템과 무선통신, 테슬라코일 등을 발명했다. 전기 문명의 근간을 마련해 과학 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테슬라에 견주어 언급되는 인물이 크로아티아의 젊은 기업가 마테 리막(33·사진)이다. 리막은 2009년 21세에 전기 하이퍼카(초고성능차) 기업 리막오토모빌리를 설립했다.
역사는 12년으로 짧지만 리막의 전기차 기술력은 세계 정상급으로 평가받는다. 눈치 빠른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이미 리막과 손을 잡았다. 메르세데스벤츠 애스턴마틴 페라리 현대자동차그룹 재규어 코닉세그 피닌파리나 포르쉐 마그나 르노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주엔 폭스바겐의 슈퍼카 브랜드인 부가티가 리막과 포르쉐의 합작사 브랜드로 재탄생한다고 발표했다. ‘유럽의 테슬라’ 리막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리막은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발명’에 대한 열정도 강했다. 이미 18세 이전에 한국과 독일 벨기에 스위스 크로아티아 등지에서 열린 세계 발명대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했다. 첫 발명품은 마우스와 키보드를 대체할 수 있는 디지털 장갑 ‘아이글러브’였다. 터치스크린이 대중화되기 훨씬 전의 일이다.
‘발명왕’ 리막이 푹 빠져 있던 것 중 하나가 자동차 경주였다. 18세 때는 직접 자동차 경주에 참가하려고 1984년식 BMW E30 323i 중고를 사서 개조했다. 그런데 두 번째로 참가한 대회에서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다. 낡고 녹슨 엔진이 결국 폭발해버린 것이다. 이때 리막은 가솔린 엔진 대신 전기모터를 달기로 했다. 미국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전기모터를 얹은 자동차로 야심차게 대회에 출전했지만 온갖 조롱이 쏟아졌다. “자동차가 아니라 세탁기”라는 말도 나왔지만, 경주가 시작되자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당시 리막의 BMW E30은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에 도달하는 시간인 ‘제로백’이 3.3초에 불과했다. 이후 국제자동차연맹(FIA)과 기네스북이 공인하는 신기록 행진이 이어졌다. 리막은 전기 파워트레인(동력전달장치) 장착과 관련한 특허도 여럿 취득했다. 이를 통해 번 돈으로 2009년 베른응용과학대 재학 시절 리막을 설립했다. 집에 딸린 차고에서 홀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어 2011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첫 하이퍼카인 ‘콘셉트원’을 공개했다. 최대 출력이 1088마력에 달했지만 처음부터 주목받진 못했다. 오히려 “설립 2년밖에 안 된 신생기업이 어떻게 하이퍼카를 만들겠느냐”며 기술력을 의심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낭중지추’라는 말처럼 리막에 조금씩 업계의 이목이 쏠리기 시작했다. ‘콘셉트원’을 바탕으로 개발한 양산 모델은 2016년 400m 직선 도로를 빠르게 달리는 경주인 드래그 레이싱에서 우승했다. 올해 공개한 신차 네베라는 대당 200만달러(약 22억원)에 150대만 한정 판매하는데도 금세 완판됐다.
포르쉐와 현대차, 기아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리막의 기술력을 보고 잇따라 투자에 나섰다. 리막의 지분 구조는 마테 리막 37%, 포르쉐 24%, 현대차 12%, 기타 27% 등으로 구성됐다. 직원 수는 약 1000명에 달하고, 기업가치는 7억9500만유로(약 1조800억원)로 추정된다.
‘전기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가운데 유럽에서는 리막, 미국에서는 테슬라를 중심으로 연합 전선이 구축되는 모습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에 일론 머스크가 있다면 유럽에는 리막이 있다”고 했다.
리막의 목표는 단순히 하이퍼카를 생산해 판매하는 게 아니다. 리막은 “가장 야심찬 프로젝트는 고성능 전기차를 개발하려는 모든 제조업체에 배터리, 구동계 등 전기차 시스템을 공급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막은 이미 코닉세그와 애스턴마틴 등에 배터리 기술을 제공하고 있다. 현대차그룹과 함께 전기 하이퍼카 기술을 고성능 수소전기차 영역으로 확대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