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는 숫자뿐 아니라 꿈을 먹고 자란다. 기업의 현재 이익은 물론이고 어떤 성장 스토리를 써나갈지가 고스란히 반영된다. “주가는 ‘미래’ 실적의 함수”라는 말에서 미래는 곧 스토리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런 경향은 더 심해졌다. 2차전지 등 유망 업종의 주가수익비율(PER)이 100배를 넘으면서 증권가에 ‘PDR(price to dream ratio)’이라는 말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올 들어 국내 주요 10대 그룹의 시가총액 등락률을 비교해봤다. 친환경 등 메가트렌드와 경기회복 테마에 올라탄 그룹의 시총은 코스피지수 상승률을 웃돌았다. 독특한 전략이 스토리가 된 그룹의 주가도 올랐다.
한화그룹 계열사 가운데 한화투자증권은 시총이 4709억원에서 9655억원으로 105.01% 급증했다. 한화투자증권은 암호화폐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에 지분투자를 하고 있다. 시총이 80% 늘어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우주 시장 선점을 위해 올초 출범한 한화그룹 우주 태스크포스(TF) ‘스페이스 허브’의 중심축을 맡고 있고, 한화시스템은 미국 개인항공기(PAV) 기업 오버에어와 하늘을 나는 에어택시 ‘버터플라이’ 공동 개발에 나섰다. 한화그룹 시총 증가를 설명하는 단어는 ‘우주’와 ‘블록체인’이다.
10대 그룹 중 시총 증가율 1위인 포스코는 더 이상 ‘굴뚝기업’이 아니다. 작년 말 ‘2050 탄소중립(탄소 순배출량이 0이 되는 상태)’ 방침을 선언한 데 이어 계열사별로 탄소 배출을 줄이고 미래를 선도할 유망 기술을 찾고 있다. 포스코케미칼의 경우 연간 6만t 규모 2차전지 양극재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하자 지난 8일 하루에만 주가가 6.7% 올랐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친환경 전기차 부품 생산능력을 확충해 2025년 글로벌 시장 20%를 점유하는 게 목표다.
올해 현대자동차그룹이 시총 증가율 4위에 오른 것은 ‘탈엔진과 전기·수소차 경쟁력 확보’에 대해 시장이 긍정적으로 평가한 결과다. 한화그룹 시총 비중 1위인 한화솔루션은 국내 태양광 대표주다.
국내 대기업들의 전략산업이 된 2차전지와 여기에 필요한 소재산업을 이끄는 주력 계열사 대부분이 과거 ‘공해 산업’의 대명사로 불렸던 화학업종에 속한 기업들이다.
삼성그룹 시총이 늘어나지 않은 이유도 ‘새로운 스토리의 부재’로 설명할 수 있다.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반도체 이후의 스토리를 쓰지 못하고 있다. 이 와중에 총수의 부재로 대규모 투자와 사업구조 재편에 난항을 겪고 있다. 삼성그룹은 10대 그룹 중 시총 상승률 꼴찌였다. 제대로 된 전략을 내놓지 못 하고 있는 롯데 역시 시총 증가율 최하위권을 맴돌았다.
미래 스토리에 더해 코로나19 회복 국면에서 리오프닝(경기 재개) 수혜가 가능한지 여부도 시총 운명을 갈랐다. 10대 그룹사 전체 계열사 중 시총 상승률 1위는 포스코강판(348.28%)으로, 경기회복에 따라 강판 가격이 급등한 덕을 봤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