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승계 때 세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증여세 과세특례 제도가 운영되고 있지만 까다로운 요건으로 인해 고충을 호소하는 중소기업이 잇따르고 있다. 성장성이 좋은 기업이 유리한 데다 상속 시점에 제한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L씨가 주식 가치 70억원을 기준으로 낸 세금은 약 10억원이다. 선대 경영자가 사망하는 시점에 주식 가치가 두 배가 돼 있으면 과세특례를 잘 활용한 셈이 된다. 증여 당시 가치를 기준으로 상속세를 정산한 후 이미 낸 세금을 공제하기 때문이다. 성장성이 좋은 기업만 절세가 가능한 이유다. 과세특례는 선대 경영자의 사망 시점에 제한이 없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일반 증여는 선대 경영자가 증여한 뒤 10년이 지난 재산은 증여자 사망 때 상속재산에 합산되지 않지만, 과세특례는 시기에 제한 없이 상속재산에 합산된다.
이현정 IBK컨설팅센터 수석컨설턴트는 “사후관리 기간(7년) 내 망하기라도 하면 일반 세율로 증여세를 내는 것은 물론 9%대 고율로 이자 상당액까지 물어야 한다”며 “기업이 사전 증여를 선호하지만 과세특례를 잘 선택하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지분 일부 및 전부 등 사전 증여를 원하는 기업 비율은 90%에 육박한다. 그럼에도 2019년 기준 과세특례 활용 건수는 170여 건에 그친다.
세제 지원 한도가 적은 것도 문제로 꼽힌다. 가업상속공제 한도는 최대 500억원이다. 과세특례 한도는 5분의 1인 100억원이다. 전문가들은 한도를 상속공제처럼 500억원으로 늘리는 동시에 적용 대상도 개인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상속공제가 법인 및 개인사업자 모두에 적용되는 것과 달리 과세특례는 법인만 가능하다. 장수 기업이 많기로 유명한 독일은 증여와 상속 간 세제 지원에 차이가 없다.
신상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정책분석평가사업단장은 “기업은 증여를 원하는데 세제 정책은 상속에 더 큰 지원을 하고 있어 현실과 괴리가 있다”며 “한도 및 적용 대상 확대를 검토하는 등 현실에 맞게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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