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4차 유행이 시작됐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까지 기승을 부리며 세계가 불안에 떨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코로나19 백신을 신속하게 생산하는 게 중요하다. 식물을 이용한 ‘그린 백신’은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캐나다 바이오 제약기업인 메디카고는 식물체를 이용해 코로나19 백신을 생산하는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최근 임상 3상에 진입했다. 바이오의약품은 미생물, 곤충세포, 동물세포 등 다양한 방법으로 생산할 수 있는데, 식물을 이용하면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는 병원체에 의한 오염 위험이 낮다는 장점이 있다. 또 필요한 단백질을 신속하게 대량 생산할 수 있고 복잡한 구조의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분자농업은 이미 확보된 기존의 농업시스템을 이용해 대규모 생산을 하고, 식물이 갖는 안전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많은 기업이 이런 점을 감안해 상업화를 목적으로 관련 법인을 설립하고 있다. 캐나다 메디카고와 미국 켄터키 바이오프로세싱, 이스라엘 프로탈릭스 바이오테라퓨틱스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는 바이오앱, 엔비엠, 지플러스생명과학 등이 분자농업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분자농업을 세상에 알린 주역은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제로 알려진 ‘지맵’과 프로탈릭스가 개발한 고셔병 치료제 ‘엘레라이소’다. 지맵은 담배 식물을 이용한 세 종류의 단클론항체로 구성돼 있다. 동물이나 미생물과는 다른 식물만의 합성 방식에 따라 만들어진 항체로, 기존의 항체 의약품에 비해 결합 능력이 뛰어나다.
엘레라이소는 당근의 세포를 이용해 생산한 효소로, 지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아 판매되고 있다. 식물 기반의 4가 독감 백신을 연구한 경험이 있는 메디카고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유사 입자를 식물체에서 빠르게 생산해 현재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다양한 식물이 바이오의약품 생산에 사용될 수 있지만 대부분 기업은 ‘니코티아나 벤타미아나’를 활용하고 있다. 이 식물은 담배와 비슷한 식물로, 빠르게 생장하고 많은 양의 바이오매스를 얻을 수 있어 원하는 단백질을 쉽게 대량으로 확보할 수 있다. 켄터키 바이오프로세싱과 메디카고는 이 식물을 파종에서 수확까지 대량으로 처리할 수 있는 자동화 시설을 구축해 바이오의약품 생산 연구를 하고 있다.
이런 가능성을 보고 유럽연합은 2018년 바이오의약품 생산에 적합한 니코티아나 벤타미아나를 개발하기 위한 ‘뉴코티아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유전자 편집기술을 포함한 신육종기술을 적용해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고부가가치 산물을 생산하는 식물을 개발하고 있다. 동시에 분자농업의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파마 팩토리(Pharma Factory)’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2022년까지 계속되는 두 프로젝트에는 1500만유로(약 202억원)가 투입된다.
다른 하나는 식물체에서만 증식하는 식물바이러스를 이용해 목적단백질을 생산하는 일시적 발현 방법이다. 전자의 방식을 백신에 적용할 수 있으면 다양한 질병의 백신 단백질을 생산하는 식물을 종자 형태로 보관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비슷한 바이러스가 나타날 경우 즉각 대응할 수 있다.
메디카고는 후자의 방식을 택했다. 일시적 발현 방법은 형질전환 식물체를 개발하지 않고도 이른 시간 내에 필요한 백신 단백질을 생산하고 현장에 적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식물시스템공학연구센터에서는 식물 기반의 바이오의약품 생산을 위한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새로운 식물 바이러스의 벡터를 생산해 목적단백질이 세포 내에서 안정적으로 발현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를 바탕으로 식물을 이용한 그린백신 생산을 위한 원천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 백신 후보물질을 생산하기 위해 국내 연구그룹과 협력을 통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분자농업은 4차 산업혁명의 중심 분야인 스마트팜 기술에 접목 가능한 콘텐츠다.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사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권석윤 <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융합생물소재연구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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