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 작품은 난해하다는 오해가 있습니다. 자세히 듣다보면 역경에 처해 힘들어하는 우리 모습과 닮았어요. 오히려 친근하게 감상할 수 있을 겁니다.”
지난 12일 만난 마시모 자네티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사진)는 로베르트 슈만의 교향곡을 감상해야 하는 까닭을 이렇게 말했다. 복잡한 인간의 내면을 탁월하게 풀어낸 작곡가라는 설명이다. 그는 “베토벤의 작품은 걸작이지만 공감하긴 어렵다”고 단언한다. 인류애처럼 거대한 주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반면 슈만에 대해선 “평범한 인간을 주로 다뤘기에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부각한 ‘보통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고찰하는 공연을 펼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네티는 이탈리아 지휘자이지만 주로 독일에서 경력을 쌓았다. 독일 슈타츠카펠레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베를린 등 세계 정상급 악단과 오페라를 공연했다. 교향곡 연주 역량도 갖췄다.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체코 필하모닉의 정기 공연을 지휘하기도 했다. 그는 2018년 경기필하모닉 상임지휘자로 선임됐다.
경기필하모닉은 창단 후 처음 슈만 교향곡 전곡 연주에 도전한다. 오는 17일 수원 경기아트센터와 1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헤리티지 시리즈 Ⅳ’를 통해서다. 공연에서 경기필하모닉은 슈만의 교향곡 1번과 2번을 들려준다. 교향곡 3번과 4번은 9월 10~11일 예술의전당과 경기아트센터에서 연주할 계획이다.
공연 첫 곡인 교향곡 1번은 슈만이 클라라와 결혼한 직후인 1841년 작곡한 레퍼토리다. 독일 시인 아돌프 뵈트너의 ‘봄의 시’ 마지막 구절인 ‘산골짜기에서 봄이 피어오른다’를 보고 영감을 받았다. 평온하면서도 희망찬 선율이 돋보이는 곡이다. 자네티는 “슈만이 클라라와 꾸려갈 삶에 대한 기대가 녹아든 작품”이라며 “이때까지 슈만은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희망은 다음 곡에서 산산조각난다. 그가 신경쇠약을 앓으며 가장 절망적인 시기에 써낸 교향곡 2번으로 이어진다. 슈만의 작품 중 가장 혼란스러운 곡으로 꼽힌다. 한 악장 안에서도 희비가 교차되는 선율이 흐른다. “슈만의 내적갈등을 감상할 수 있는 곡입니다. 형태부터 특이하죠. 보통 3악장에서 연주하는 스케르초를 2악장에 배치했습니다. 3악장에선 절망적이고 애절한 환상곡 선율이 담겨있어요. 약 37분 길이의 교향곡에서 슈만의 일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슈만 교향곡 전곡을 연주한 음악회는 드물었다. 국내에서 전곡 완주에 성공한 악단도 손에 꼽는다. 2010년 임헌정 부천필하모닉 상임지휘자가 완주한 후로 11년째 소식이 없다. 작품은 네 개에 불과하지만 연주 난도가 높아서다. “슈만은 미세한 음정 변화를 모두 오선지에 적어놨습니다. 지휘하는 입장에선 고역이죠. 모든 음표를 들려줘야 해서요. 그의 의도를 관객들에게 전하려면 웅장하고 화려한 기교를 빼야 합니다. 잡음이 들릴까봐 현악 편성도 최대한 줄였습니다. 물처럼 투명하게 들을 수 있게….”
수원=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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