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 ‘세대교체 바람’을 몰고온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당대표 선출 한 달여 만에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첫 여야 대표 회동에서 합의한 사안에 대해 당 안팎에서 비판이 들끓고 있어서다. ‘30대·0선’ 야당 대표에게 열광했던 정치권이 허니문 기간을 끝내고 본격적인 견제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사태 수습 결과가 내년 3월 대선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여야 대변인은 전날 재난지원금과 관련, “소상공인 지원을 두텁게 한다는 전제하에서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합의했다”는 여야 대표의 합의 내용을 발표했다. 이 대표가 “전 국민 재난지원금에 합의했다”는 논란이 확산되자, 황보승희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약 1시간40분 뒤 “우선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만약 재원이 남으면 재난지원금 범위를 전 국민으로 확대하는 것을 검토하는 데 동의했다”는 내용의 더욱 분명한 합의안을 공개했다.
그런데도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야권 잠룡들은 이날 “전 국민에게 용돈 뿌리기는 그만하라”(홍준표 의원) “여당의 포퓰리즘 매표 행위에 날개를 달아준 꼴”(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이라고 맹비난했다. 당내 경제통인 윤희숙 의원도 이틀 연속으로 SNS에 글을 올리며 이 대표를 ‘제왕적 당대표’라고 공격했다. 민주당의 공격도 더해졌다. 이 대표를 향해 “약속을 어기는 정치인은 정치해선 안 된다”(이재명 경기지사) “합의를 100분 만에 뒤집다니 국정이 장난이냐”(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고 날을 세웠다. 정치권에선 ‘노련한 586 정치인’(송영길)에게 “MZ세대(밀레니엄+Z세대) 당대표가 당했다”는 얘기까지 돌았다.
정치권에선 ‘소상공인 피해를 더 두텁게 지원하자’는 당의 입장이 관철된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 대표는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추경 총액을 (정부안보다) 증액하지 않는 선이라면 재난지원금 대상을 늘리는 것보다 소상공인 지원이 더 중요하다”며 “소상공인 지원을 확대하면 전 국민 재난지원금에 쓸 돈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대야소’ 국면에서 내린 전략적 판단이라는 의미다. 민주당이 오히려 전 국민 재난지원금에 반대하는 정부를 설득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합의사항을 침소봉대해 당 내부에서 이 대표를 공격하는 것은 자해정치”라고 했다.
다만 이 대표에게 우호적인 의원들도 “실제 협상 권한을 가진 원내지도부와 사전 협의를 하지 않은 것은 성급했다”고 지적했다. 송 대표가 지난 7일 정책 의원총회를 통해 재난지원금에 대한 당내 의견을 수렴한 것과 대조적이다. 한 의원은 “집단면역이 달성되는 시점에 여당에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의 명분을 만들어 준 것”이라며 “리더십에 생채기가 생긴 건 사실”이라고 평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 대표의 활동 반경이 좁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앞서 통일부와 여성가족부를 폐지해야 한다는 이 대표의 소신 발언에 대해서도 당내에선 “의견 수렴이 없었다” “대선 후보가 공약으로 정할 사안”이라는 반대 의견이 나왔다.
좌동욱/이동훈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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