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world View] 한국은 명실상부한 '선진국'인가

입력 2021-07-13 17:26   수정 2021-07-14 00:11

이달 초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RD)가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아시아·아프리카)에서 ‘선진국’으로 변경한 것을 계기로, ‘과연 한국이 선진국인가’에 대한 문의가 많다. 세계 모든 국가 중에서 한국의 지위만큼 우리 국민과 다른 국가 국민 간 차이가 크게 나는 국가도 없다. 문의자 대부분은 한국이 선진국이 아니라고 과소평가하는 반면, 나라 밖에서는 한국을 실제 위상보다 높은 선진국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나라 안팎으로 한국이 선진국이냐를 놓고 차이가 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선진국이란 개념이 학술적으로 명확하게 정의된 것이 아니고 각 기관과 학자가 필요와 목적, 용도에 따라 선진국 개념을 설정하고 분류해 왔기 때문이다. 같은 국가라 하더라도 어떤 기관에서는 ‘선진국’으로, 다른 기관에서는 ‘신흥국’으로 분류함에 따라 해당국 국민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의 지위가 그렇다.

가장 널리 알려진 분류 기준은 ‘1인당 소득’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이 자체적으로 발간하는 통계와 보고서를 보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달러 이상인 국가는 ‘선진국’, 1만달러에서 3만달러 이내 국가는 ‘중진국’, 1만달러 밑의 국가는 ‘후진국’으로 구분한다. 한국은 1인당 GDP가 2017년부터 3만달러대에 진입해 이 기준대로라면 선진국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1인당 GDP로 분류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 맹점을 갖고 있다. ‘1인당 소득이 각국 국민의 행복지수로 과연 적합한가’는 논외로 치더라도 해당국 인구와 통화 가치에 따라 국가별 지위가 크게 차이 나기 때문이다. 특정 연도에 GDP 규모가 3000억달러로 같은 A, B국이 있을 때 인구 1000만 명의 A국은 ‘선진국’으로 격상되고, 1억 명의 B국은 후진국 중에서도 저소득국으로 추락한다.
‘30-50 클럽’ 가입 한국에서만 요란
인구에 따라 각국의 지위가 바뀌는 것을 보완하기 위한 분류 기준이 ‘30-50’ 클럽이다. 30-50 클럽이란 1인당 GDP가 3만달러, 인구가 5000만 명을 동시에 충족하는 국가를 말하는 것으로, 엄격히 따진다면 ‘국력’ 지표에 가깝다. 단순히 절대 인구수만 따지는 이 분류 기준은 1인당 GDP보다 많이 활용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에 이 클럽에 가입한 한국만 요란했을 뿐이다.

세계 경제 최고 단위에 들어가느냐 여부로 각국의 지위를 따지기도 한다. 1973년 제1차 오일쇼크 대책 차원에서 탄생한 주요 7개국(G7) 회의는 국수주의를 표방했던 도널드 트럼프 정부 때 잠시 뒷전으로 물러나기도 했지만 세계 경제를 실질적으로 주도해 왔다. 회원국은 미국, 캐나다, 일본,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영국이다. 잃어버린 20년(일본), 금융위기(미국), 재정위기(이탈리아) 등을 겪으면서 위상이 종전만 못하지만 선진국이라는 점에서는 그 어떤 기준보다 논의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매번 의장국이 바뀔 때마다 옵서버로 어떤 국가가 참석하느냐에 따라 초청받은 국가의 위상이 올라간 것으로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올해 6월 영국에서 열렸던 G7 회의에는 날로 격화되는 미국과 중국 간 경제패권 다툼 속에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한국의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 초청됐으나, 한국 내에서는 선진국으로 위상이 높아졌다고 홍보해 나라 안팎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회의 전후 공식적으로 찍는 사진도 의장, 차기 의장국 순으로 정해져 있어 어느 위치에 서 있느냐는 경제 위상과 거리가 멀다.


세계 경제 최고 단위로 G7이 한계를 보이고, 1990년대 이후 글로벌화 진전과 개방을 표방한 중국, 러시아 등 사회주의 국가가 같은 경제권으로 편입되자 1999년 IMF의 제의로 창설된 G20에 속하느냐에 따라 각국의 경제 위상을 따지는 기준으로 활용돼 왔다. 하지만 G20 회원국에는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공화국, 터키 등 고질적인 위기국이거나 위기 후보국이 포함돼 있어 G20에 속했다 하더라도 선진국으로 부르기는 어렵다.
개도국 지위 포기 부담도 만만치 않아
G20과 비슷한 각도에서 우리나라에서 크게 왜곡된 기준이 OECD에 가입했다고 해서 선진국으로 보는 시각이다. OECD 가입 기준은 경상거래와 자본거래 면에서 자유화율이 핵심 기준이다. 두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기존 회원국이 찬성할 경우 신규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는 사례도 있다. 현재 37개 회원국 중에는 터키, 헝가리, 콜롬비아 등이 포함돼 있다. 1996년 김영삼 정부 시절 우리가 OECD에 가입한 것을 계기로 선진국이 됐다고 자화자찬했으나 그때부터 외환위기가 시작됐다.

원조와 특혜를 받느냐 안 받느냐에 따라 선진국으로 평가하는 기준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상의 지위다. 1961년 OECD 창설 이후 한국은 공적개발원조(ODA)의 수여국에서 공여국으로 바뀐 유일한 국가다. 이달 초 UNCTARD에서 한국의 지위가 선진국으로 변경돼 우리 위상이 높아진 면도 있지만, 일반특혜관세(GSP) 등 종전의 아시아·아프리카 지위로 누려온 특혜를 포기해야 함에 따라 국익 관점에서 보면 부담도 만만치 않다. 2년 전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 것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하드웨어 지표를 중심으로 한 각종 분류 기준을 토대로 평가한 한국의 위상을 종합해 보면 ‘선진국’으로 보더라도 무난해 보인다. 하지만 부패지수, 지하경제 규모, 위조지폐 발견 건수, 조세피난처에 숨겨 놓은 검은돈 규모 등으로 평가되는 소프트웨어 면에서 분류 기준으로 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매년 12월 9일 ‘부패의 날’에 앞서 발표되는 독일 국제투명성기구(TI)의 부패도지수(CPI)를 보면 한국은 하드웨어 위상 대비 부패가 가장 심한 국가로 평가돼 오고 있다.

오히려 포트폴리오상 투자 지위는 더 퇴보했다. 하드웨어 위상을 중시하는 파이낸셜타임스 스톡익스체인지(FTSE)지수로 한국은 2009년부터 선진국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도덕적 책임 등 소프트웨어 지표를 중시해 평가하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지수는 2008년 어렵게 선진국 예비 명단에 들어갔으나 2014년에는 신흥국으로 재추락했다. 글로벌 벤치마크 지수뿐만 아니라 모든 위상 지표는 한번 올라가다가 떨어지면 ‘낙인 효과’로 인해 재차 올라가기 위해선 두 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가장 빠른 기간에 ‘성숙 채권국’으로 변신
채권과 채무이론으로 글로벌 부(富)의 지도상에 각국은 ‘미성숙 채무국→성숙 채무국→미성숙 채권국→성숙 채권국’을 거치는 것이 전형적인 경로다. 한국은 1960년대 이후 경제 개발 초기만 하더라도 ‘미성숙 채무국’에서 가장 빠른 기간에 ‘성숙 채권국’으로 변신한 국가다. 2016년 한국이 파리 클럽에 가입한 것도 이 때문이다. 1956년 설립된 파리 클럽은 대출 상환 연장, 채무탕감, 이자율 조율 등을 다루는 공적 채무 조정협의체를 말한다.

결국 하드웨어 위상을 접할 기회가 많은 나라 밖에서는 한국을 ‘선진국’으로 보지만, 각종 소프트웨어 지표를 속속 들여다보고 체감하는 나라 안에서는 ‘선진국’으로 느끼지 못하는 이유다. 우리 국민이 선진국으로 느낄 수 있기 위해서는 부정부패 청산 등을 통해 깨끗한 사회를 만들어 소프트웨어 면에서 최소한 하드웨어 위상만큼 끌어올려야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포스트 코로나 땐 GO?
경제위상·행복지수 평가…GDP보다 '총생산' 주목
1937년 사이먼 쿠즈네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통계학 교수가 개발한 이후 지금까지 각국의 경제 위상을 평가하는 데 가장 많이 활용해 온 소득지표는 모든 경제주체가 일정 기간 새롭게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의 부가가치를 합산한 것을 말한다. 포괄 범위에 따라 국민총생산(GNP), 국내총생산(GDP), 국민순소득(NNI), 국민처분가능소득(NDI), 국민소득(NI), 개인가처분소득(PDI)으로 구분된다.

국민소득 개념 가운데 GDP가 처음부터 특정국 경제를 판단하는 ‘절대 지표’는 아니었다.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측정하려는 시도는 산업혁명과 자본주의가 태동한 1800년대부터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이 논의가 구체화한 것은 경제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점검하고, 이를 토대로 부양책을 쓰기 위해 정확한 통계가 필요했던 1930년대 대공황 시기였다.

이때부터 거시경제 분석이 소득 측면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에 GNP를 소득 통계의 중심 지표로 삼아왔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GDP의 유용성이 더 높아졌다. 글로벌화 진전으로 국제 자본 이동과 기술이전이 활발해짐에 따라 ‘우리 국민이 얼마나 벌었나’보다 ‘우리 땅에서 얼마나 물건을 만들었나’를 보는 게 유용했기 때문이다.

각국도 소득 통계의 중심 지표를 GDP로 바꾸기 시작했다. OECD 회원국 중 유럽 국가는 1970년대 중반, 미국은 1991년, 독일은 1992년, 일본은 1993년부터 GDP를 도입했다. 한국도 국제 추세에 맞춰 1995년부터 GNP에서 GDP로 변경해 발표했다. 다른 신흥국도 대부분 1990년대에 도입했다.

하지만 특정국 경제 상황을 파악하는 데 중심 지표로 자리 잡은 뒤에도 GDP에 대한 비판은 계속해서 제기돼 왔다. 이른바 ‘삶의 질’ 논란으로, ‘국민의 행복은 GDP 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차원에서 새로운 지표가 많이 개발됐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국민 행복 차원에서 GDP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지표에 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2008년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조지프 스티글리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등 세계적인 석학을 초빙해 ‘스티글리츠 위원회’를 결성했다. 한국도 이명박 정부 때 ‘그린 GDP’를 만들려는 계획을 추진했다. 프랑스와 한국 모두 정권 교체로 결실을 보지 못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각국의 위상을 평가하는 데 2014년 4월부터 미국 상무부가 GDP의 보조지표로 발표해온 ‘GO(Gross Output·총생산)’를 뒤늦게 주목하고 있다. GDP는 최종 생산재만 계산하다 보니 소비 비중이 너무 높아 경제정책에 혼선을 준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GO는 제조 과정이나 기업 간 거래를 파악할 수 있어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정착되는 때 각국의 경제 위상과 행복지수를 평가하는 데 중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준비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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