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은선 서울 오류동역장(57·사진)은 국내 철도 동호인 사이에서 ‘형님’이라고 불린다. 철도산업에 종사하는 현역 전문가이면서 소문난 ‘철도 마니아’이기 때문이다. 철도가 좋아 박사학위도 따고, 2019년에는 “120년을 맞은 한국 철도의 역사서를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기차가 온다》라는 책도 출간했다. 지난달 ‘철도의 날(6월 28일)’을 맞아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서 ‘이색 철도인’으로 선정한 그를 최근 서울역에서 만났다.
배 역장은 올해로 철도산업에 종사한 지 38년째다. 수송원, 운전원, 차장(車掌), 역장은 물론 홍보 업무와 같은 사무직까지 거치지 않은 직무가 드물다. 특히 2003년 홍보 업무를 담당하면서 철도 역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했다. “2004년 KTX 개통을 앞둔 시기라 언론에서 옛날 철도들의 운임, 시간표, 열차 종류 등을 문의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내부에 이를 전담하는 부서가 없으니 ‘네이버에 검색해보세요’라고 답변할 수밖에 없는 창피한 일도 간혹 있었죠.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개인적으로 대학원에 진학해 체계적으로 역사 공부도 하고, 회사에 건의해 철도연표를 새로 정리하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배 역장의 이런 노력 덕에 한국철도 111주년인 2011년에 철도 주요 연표가 나왔다.
철도 역사를 연구하면서 배 역장이 새롭게 밝혀내거나 오류를 바로잡은 것이 꽤 있다. 한국 최초 철도인 경인선의 개업 예식이 열린 장소가 노량진이 아니라 인천이라는 것, 경인선의 첫 개통 구간으로 알려진 제물포역~노량진역 구간 중 제물포역의 역명이 원래는 인천역이었다는 것 등이다.
풍부한 철도 지식 덕에 배 역장은 철도 동호인 사이에서 연예인만큼 인기를 누리는 유명인이다. 철도 동호인들과 인터넷 카페, SNS 등으로 소통하는 일은 그의 일상이다. 동호인 중 자신을 따라 철도인의 길을 걷는 후배에겐 결혼식 주례를 서주기도 했다.
배 역장은 “방송에 나올 정도로 철도를 좋아하던 친구였는데 든든한 후배가 돼 기쁜 마음으로 주례를 섰다”며 “철도 동호인들은 순수하게 철도를 아껴주는 만큼 늘 감사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철도인이 아닌 일반인도 철도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아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배 역장은 “한국의 근대사·경제성장 역사가 철도와 함께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개화기에는 외세의 침략과 함께 철도가 시작했고, 해방 이후에는 화물 열차가 닿는 곳이 곧 경제성장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배 역장은 “과거 사양산업으로 여겨졌던 철도가 KTX 개통으로 부활하면서 생활·교통에서 가장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며 “많은 국민이 더욱 철도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은퇴 후 유튜브에 도전할 것”이라고 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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