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암호화폐거래소에 대한 인가 및 감독 권한을 행사하고, 투자자 예치금을 별도 보관하는 것 등을 핵심으로 하는 가상자산업법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관리감독 사각지대였던 암호화폐 시장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려는 작업이 본격화된 것이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13일 전체회의를 열어 가상자산 사업자 규제와 투자자 보호를 담은 법안을 상정했다. 상정된 법안은 △가상자산업법안(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 발의) △가상자산업 발전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김병욱 민주당 의원) △가상자산 거래에 관한 법률안(양경숙 민주당 의원) △전자금융거래법 일부 개정 법률안(강민국 국민의힘 의원) 등 4개다. 다음달 법안소위에서 관련 법안의 논의가 시작될 전망이다.
이들 법안은 금융당국의 인가를 받은 거래소만 영업할 수 있도록 했다. 현행 특정금융정보법은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획득과 실명 입출금계좌 등의 요건을 갖춘 신고 의무만을 부여하고 있는데 진입 규제를 대폭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에 가상자산사업자(거래소, 커스터디 업체 등)에 대한 검사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도 담겼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이날 정무위에 출석해 ‘금융위가 별도로 법안 작업을 준비 중이냐’는 질의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획재정부, 다른 부처와 함께 검토하고 있다”며 “국무조정실은 정부안을 낼 방침”이라고 답했다.
4개 법안 국회 상정
4개 법안 중 김병욱 의원안을 제외한 나머지 법안은 암호화폐거래소에 대해 ‘인가제’로 다룰 것을 규정했다. 금융당국의 심사요건으로는 자기자본(5억원 이상)과 사업계획의 타당성, 재무건전성, 사회적 신용 등을 제시했다. 기존에 특정금융정보법에서 신고요건으로 정한 정보보호관리체계(ISMS)와 실명입출금계좌를 획득해 요건을 충족했어도 당국 심사에서 탈락하면 영업할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양경숙 의원안은 진입요건을 가장 강화한 법안으로 꼽힌다. 거래소뿐 아니라 보관업(커스터디)과 발행업 등에 대해서도 인가제를 적용하는 조항을 담았다. 자기자본금 요건도 30억원으로 높게 정했다. 김병욱 의원안은 법에서 정한 요건만 충족하면 영업할 수 있는 등록제로 진입장벽을 낮췄다. 이용우 의원안은 ‘절충안’으로 분류된다. 거래소를 제외한 커스터디 업체와 지갑 업체에는 등록제만 적용하도록 규정했다는 점에서다.
이용우 의원안을 제외한 3개 법안이 모두 암호화폐 개발업체에 자본금 요건을 부과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팀 단위로 운영되는 소형 개발사 가운데 자본금 요건인 5억원을 충족할 수 있는 업체가 드물기 때문이다. 4개 법안 모두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에 가상자산사업자에 대한 검사 권한을 부여하도록 했다.
거래소에 해킹 방지 등에 대한 입증 책임을 묻고, 이를 입증하지 못하면 손해배상을 하도록 하는 등 투자자 보호 장치도 대폭 강화될 전망이다. 우선 거래소가 투자자 예치금을 분리하도록 했으며, 투자자와 거래소가 피해보상계약을 맺도록 의무화했다. 해킹, 전산 오류 등 일부 사례에서는 거래소에 입증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금융당국도 법안 검토를 위한 기초작업에 들어갔다. 은 위원장은 이날 정무위에 출석해 “578개 코인을 하나로 묶어 어떤 법을 제정한다는 게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기초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하나의 단일한 자산이 아니라 지급형, 토큰형 등 여러 형태가 있는데 나누기가 어려워 자료를 찾고 분석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금융위와 행정안전부는 금융정보분석원(FIU) 산하에 암호화폐 관련 업무를 맡는 과 혹은 국 단위 조직을 신설하는 방안을 협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은 위원장은 또 “(바이낸스 등) 해외에 소재지를 둔 암호화폐거래소도 FIU에 신고해야 한다”며 “한국어 서비스가 단순한 서비스인지 영업하려는 것인지 (의도를) 소명하라는 안내문을 보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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