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SK그룹 직원 7명이 만든 자본금 16억원 규모의 사내 벤처가 연매출 1조원 회사로 커졌다. 직원 수는 31명에서 1041명으로 늘었다. SK그룹의 지원을 받아 손쉽게 큰 게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진짜 성장은 ‘SK 후광’이 사라진 뒤 시작됐다. 이후 3년 동안 매출과 영업이익은 해마다 증가했고, 올해는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 중고차 1위 업체 케이카(K Car) 얘기다.
케이카의 옛 이름은 SK엔카 직영이다. SK그룹은 직접 중고차를 구매한 뒤 이를 소비자에게 되파는 SK엔카 직영을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에, 중고차 매매업자에게 온라인 거래 플랫폼을 제공하는 SK엔카닷컴을 호주 중고차업체 카세일즈닷컴에 매각했다.
2018년 4월 매각 작업이 끝난 뒤 경영진과 새 대주주는 사명 변경 여부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운전자라면 한 번 이상 이름을 들어봤을 SK엔카라는 이름을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임직원 대다수도 “사명 변경은 안 된다”는 쪽이었다. 그럼에도 경영진은 ‘홀로서기’를 결정했다. 과감한 브랜드 홍보 전략도 이어졌다. 하정우, 정우성, 유재석 등 유명인이 광고모델로 등장했다.고객과의 접점을 늘리기 위한 투자도 확대했다. 매장 수는 인수 직전인 2017년 말 26개에서 지난해 말 38개로 50% 가까이 늘었다. 6월 말 기준으로는 41곳에 매장을 두고 있다. 같은 기간 임직원은 714명에서 936명으로 증가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연간 판매량은 2017년 7만6751대에서 지난해 11만2909대로 47.1% 늘었다. 같은 기간 매출은 9311억원에서 1조3231억원으로 증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고차 사업부문은 SK그룹 내에서 존재감이 크지 않아 전폭적인 지원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한앤컴퍼니는 인수 이후 공격적으로 나가기로 방향을 정했고, 회사 구성원들도 이런 결정에 호응해 공세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케이카가 외형 확장보다 더 신경쓴 부분은 온라인 거래 강화다. 모든 거래가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차량이라고 예외가 아닐 것이라고 판단했다. 정인국 사장 등 케이카 경영진은 2015년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내차사기 홈서비스’를 미래 먹거리로 선택했다.
내부에서는 우려가 많았다. 당시 품질이 보장된 신차도 온라인으로 사지 않는 소비자가 대다수였는데 차량마다 상태가 일정하지 않은 중고차를 직접 보지 않고 구매할 리 없다는 이유에서다.
경영진의 생각은 달랐다. 전체 판매 중 온라인 비율은 18.6%(2017년 기준)였다. 서비스 시작 1년 만에 이 정도 성과를 거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신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온라인으로 거래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기로 했다.
차량 외관과 내부, 엔진룸, 트렁크 등을 360도 시점에서 다 들여다볼 수 있는 ‘3D 라이브 뷰’가 대표적이다. 고성능 3차원(3D) 촬영 시스템을 통해 마치 차를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고 구체적인 사진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차량에 있는 미세한 흠집까지 보여줄 필요가 있느냐는 내부 의견도 있었지만 중고차 시장에서 신뢰를 쌓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온라인으로 중고차를 구매하면 당일 배송하는 서비스도 2019년 시작했다. 중고차를 구매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3일 내에 환불할 수 있는 ‘3일 책임 환불제’ 적용 범위도 확대했다.
경영진의 판단은 적중했다. 전체 판매량 중 온라인에서 결제가 이뤄진 비중은 2017년 18.6%에서 2018년 24.8%, 2019년 28.2%로 치솟았다. 지난해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은 온라인 중고차 거래를 더욱 확산시켰다. 온라인 비중은 지난해 35.0%, 올 상반기 43.1%로 계속 상승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케이카는 미국 온라인 중고차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카바나’와 사업구조가 비슷하다”며 “비대면에 익숙한 젊은 소비자가 늘고 있는 만큼 꾸준한 성장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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