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지나간 다음날 충남 당진 합덕제에는 탐스러운 연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티 없이 깨끗한 백련부터 시선을 사로잡는 화사한 홍련, 가냘프지만 청초한 수련까지 다채로운 매력을 뽐냅니다. 여름 꽃의 대표는 역시 연꽃입니다. 연꽃은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고 깨끗함을 유지합니다. 깨달음을 구하는 스님들이 연꽃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다시 코로나19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권하여 여행을 떠나라고 말하기도 어려워졌습니다. 떠나기 어렵다면 곱고 깨끗하고 향기까지 품은 연꽃을 보며 마음을 달래보면 어떨까요.
합덕제는 전북 김제 벽골제, 황해도 연안 남대지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방죽으로 꼽힐 만큼 큰 규모를 자랑한다. 제방의 길이는 1771m, 둘레는 9㎞에 이른다. 세계관개시설유산으로 등재된 합덕제가 언제 축조됐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확실치 않다. 삼국시대 이전 한반도 중남부지방을 지배했던 마한·진한·변한의 삼한시대 축조설과 견훤과 태조 왕건이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군마에게 공급할 물을 개발하고자 만든 것을 후삼국통일 후 주민들이 보강해 저수지로 활용했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합덕제는 조선시대에도 꽤 유명한 저수지였다. 조선왕조실록에 합덕제를 중수하거나 보수했다는 기록이 곳곳에 존재한다. 합덕제는 예부터 연꽃이 많아 ‘연호방죽’으로 불렸다. 조선 영·정조 때 세워진 합덕제중수비에는 합덕제가 ‘연제’로 표기돼 있다. 연이 많은 둑이란 의미다. 합덕제는 1960년대 예당저수지가 생기기 전까지는 합덕·우강 평야(소들평야)에 물을 댔다. 예당저수지가 생기면서 저수지로서의 기능을 잃고 메워져 논이 됐다. 저수지였던 흔적은 연꽃과 함께 사라졌다. 2007년부터 당진시는 합덕제 인근에 연꽃단지와 수리박물관, 농촌테마공원 등을 조성했지만 본격적으로 이곳이 연꽃 명소가 된 것은 2018년부터다. 당진시는 14억5000만원을 투입해 이곳에 홍련과 백련, 수련, 가시연 등 30여 종의 연꽃을 심었다. 제방을 복원하고 데크 길도 만들었다.
“연꽃은 진흙에서 나왔으나 때 묻지 아니하고, 맑은 물에 씻기어도 요염하지 아니하네. 가운데는 비었으나 겉은 곧으며, 넝쿨져 뒤엉키지 않고 이리저리 가지도 치지 않네. 향기는 멀리까지 퍼지고 맑음은 나날이 더한다.”
연꽃은 실용적이기도 하다. 뿌리(연근)는 반찬으로 쓰이고 잎으로는 연잎밥을 짓는다. 잎과 꽃은 차로 만들기도 하고, 연밥(연자)은 식용하거나 약용한다.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연꽃 중간중간에 줄, 올방개 같은 볏과 식물도 많다. 물채송화나 물옥잠화 같은 수생식물도 보인다. 탐방로 중간중간에는 초가 그늘집이 있어 쉬어 갈 수 있다.
합덕제와 함께 면천읍성 옆에 있는 골정지도 연꽃 명소이자 사진 명소다. 연못 중앙에 ‘건곤일초정’이라는 초가 정자가 있는데 정자와 연꽃이 어우러진 풍경이 일품이다. 연암 박지원이 만들었다고 한다. 면천읍성 안쪽의 성산리도 널리 알려진 ‘사진 맛집’이다. 옛 건물을 리모델링해 감성이 넘치는 카페들이 여러 곳 들어섰다. 100년 된 우체국 건물에는 카페 ‘미인상회’가, 우체국 옆에는 ‘면천읍성안 그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자전거포였던 곳에는 동네 책방 ‘오래된 미래’가 들어섰고, 대폿집 자리에는 ‘진달래상회’가 문을 열었다. 예쁜 문패가 붙은 곳도 많다. ‘과자, 음료수, 라면 모두 모두 파는 곳…따뜻한 정은 덤으로 드려요’(창성상회), ‘부지런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알콩달콩 하우스’(면천 최초 우체국장댁) 등이 그런 곳이다.
당진=글·사진 최병일 여행레저 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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