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시장 진출'을 전격 선언한 인텔이 약 4개월 만에 승부수를 띄웠다. 인텔은 세계 4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로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파운드리(GlobalFoundries·GF)' 인수를 추진 중이다. 안정적인 시장 점유율 확보를 통해 파운드리시장 세계 1·2위 업체인 TSMC, 삼성전자 등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분석된다. 파운드리는 고객사의 주문대로 반도체 칩을 생산·납품하는 사업이다. 글로벌 시장 규모는 약 100조원으로 추정된다. 반도체 연관 산업 중 가장 성장성이 높은 시장 중 하나로 꼽힌다.
글로벌파운드리의 전신은 미국 반도체업체 AMD의 생산 사업부다. 2008년 AMD가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기업)로 전환하면서 떨어져나왔다. 미국 뉴욕주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아랍에미리트(UAE) 국부펀드인 무바달라인베스트가 대주주다.
글로벌파운드리는 4~5년 전까지만해도 TSMC, 삼성전자 등과 함께 '파운드리 3강'으로 꼽혔다. 하지만 2018년 "선폭(반도체 회로의 폭) 10nm(나노미터, 10억분의 1m) 이하 공정 진입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최첨단 공정엔 진입하지 못했다. 최첨단 공정 진입을 위해선 대당 2000억원 안팎의 EUV(극자외선) 노광장비 구입, 대규모 연구개발(R&D) 투자 등이 필요한 데, 최대주주인 UAE 국부펀드가 부담을 느낀 이유가 컸다.
하지만 12nm, 22nm 등 전통 공정 중에서 첨단 공정에 속하는 시장에선 여전히 강점을 갖고 있다. AMD, 퀄컴, 브로드컴등 첨단 CPU, 통신칩 등을 설계하는 팹리스들과 MCU(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등과 같은 자동차용 칩을 설계하는 업체들이 고객사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각 국의 반도체 육성책이 발표되고 미국 정부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지원이 강화되면서 글로벌파운드리도 공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지난달 싱가포르에 40억달러를 투자해 신규 파운드리 공장을 설립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해말부턴 미국·독일에서도 총14억달러를 투자해 파운드리 생산 라인을 증설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선 인텔의 파운드리 경쟁력에 대한 의문이 꾸준히 제기됐다. 인텔은 지난 30~40년 간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패권을 쥐고 흔들었던 기업이다.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쟁력을 자랑하며 고객사들의 제품 개발 스케쥴까지 좌지우지했을 정도다. 이런 이유로 '인텔이 고객사의 주문에 따라 제품을 생산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을(乙)'의 입장을 견디지 못할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파운드리시장의 터줏대감으로 불리는 글로벌파운드리를 인텔이 인수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인텔은 글로벌파운드리의 강점인 10nm 이하 전통공정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7nm 이하 최첨단 공정 기술개발에 주력할 수 있게 된다.
인텔은 파운드리 인재 영입에도 적극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삼성전자 미국법인에서 파운드리사업을 맡았던 하오 홍 담당을 스카웃한게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하오 홍은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IFS) 글로벌 비즈니스 개발 담당 부사장으로 일하게 됐다. 2008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하오 홍은 2014년부터는 삼성전자의 미국 파운드리 사업을 맡았다.
파운드리시장 양강으로 꼽히는 TSMC와 삼성전자에도 인텔의 글로벌파운드리 인수 추진은 '부정적인 소식'으로 평가된다. 기술력에 업력까지 갖춘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하는 꼴이 돼서다. 16일 오전 10시35분 현재 삼성전자 주가는 0.99% 떨어진 7만9800원을 기록 중이다. 대만 증시의 TSMC 주가도 3% 후반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실리콘밸리=황정수 특파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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