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8년 9월 프랑스 경제학자 뱅상 드 구르네는 “막지 말고 내버려둬라(Laissez-faire). 세상은 알아서 굴러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시장경제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시장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하며 수없이 많은 진화를 거듭해왔다. 진화란 무엇인가? 자신의 환경에 맞춰서 가장 최적화된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끊임없이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남기에 가장 좋은 모습으로 변화해왔다. 따라서 모든 생물의 모습은 그 자신이 사는 환경에 가장 알맞은 모습이거나 적합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진화에 실패한 종은 자연스럽게 소멸된다. 결국 진화란 살아남아 번성하기 위한 자연의 섭리다.
사회주의나 전체주의의 계획경제가 실패로 돌아가며 사라진 것과 달리 시장은 처음 교환 경제가 시작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숱한 변화를 거치며 진화하고 살아남았다. 게다가 지금도 여전히 진화를 계속하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끊임없는 진화가 가능할 수 있을까? 그것은 시장이 진화에 친화적인 덕분이다. 시장에서 경제주체들이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하다 보면 다양한 변화와 변이가 생기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바로 이 경쟁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 살아남은 것만이 후대로 전해지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과거보다 매번 더 좋은 제품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기업들은 더 나은 제품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소비자에게 선택받지 못하고,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도태돼 버리고 만다. 따라서 시장 환경에 잘 적응한 기업들과 상품, 기술만이 살아남아 시장의 활성화를 촉진한다. 하이에크는 이와 같은 시장의 선택과 진화의 과정을 ‘자생적 질서’로 봤고, “시장 경쟁이 발견 절차를 이룬다”고 말했다. 실제로 시장은 인위적인 설계 없이도 ‘보이지 않는 손’의 원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가장 적합한 질서를 형성하고 균형을 맞춰나간다.
시장의 진화는 우리 삶의 변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중세 유럽에서는 향신료를 구하기 위해 정벌과 전쟁도 불사했다. 하지만 지금 향신료를 구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려는 나라는 없다. 향신료가 더는 구하기 어려운 식재료가 아닌, 보편화된 식재료로 바뀐 덕분이다. 향신료가 이토록 널리 보급된 데에는 교통수단의 발달이 있었다.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거리의 장벽이 무너졌고, 자연스럽게 무역이 발달하며 시장의 규모와 범위가 크게 확대됐다. 거래하는 상품의 종류와 양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많아졌으며, 거래 기간 역시 놀랍도록 단축됐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편안하게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오는 물건을 받아볼 수 있는 것이다.
직업의 세분화에서도 시장의 진화를 확인할 수 있다. 현재는 과거에 비해 훨씬 많은 종류의 직업이 존재한다. 더는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지 않고 부족한 부분을 시장을 통해 해결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김치를 생각해 보자. 과거에는 김치를 먹으려면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우고, 모든 재료를 직접 준비해서 담가야 했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 직접 김치를 담그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김치를 사 먹을 수 있다. 김치를 잘 담그는 사람들이 전문적으로 담근 김치를 판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김치 재료를 준비하지 않아도, 김치를 담글 줄 몰라도 언제라도 맛있는 김치를 먹을 수 있다.
일찍이 슘페터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자본주의의 업적은 여왕들에게 더 많은 실크 스타킹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공장 여직공들이 노력을 덜해도 실크 스타킹을 신을 수 있게 한 데 있다.” 이처럼 시장의 확대와 발달, 즉 시장의 진화는 누구나 24시간 언제든지 가까운 편의점에서 저렴하게 스타킹을 구입해 신을 수 있는 보편적인 편의성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물론 진화하는 과정 속에서 다양한 실패가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실패마저도 시장은 진화의 양분으로 삼으며 더욱더 발전해 나간다. 중요한 것은 실패 그 자체가 아니라 자생적 질서에 따라 스스로 진화해 나가는 시장에 대한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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