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안 섞이고 가난해도 함께 살아 행복했던 가족, 가혹한 실업 태풍은 범죄와 가족 해체 부르는데…

입력 2021-07-19 09:01  


“가게에 진열된 물건은 아직 누구의 것도 아니잖아. 망하지 않을 만큼만 훔치면 돼.”

일본 도쿄의 일용직 노동자 오사무(릴리 프랭키 분)는 아들 쇼타(죠 가이리 분)에게 좀도둑질을 가르친다. 둘은 매일 마트와 구멍가게를 돌며 ‘세트 플레이’로 음식과 생필품을 턴다. 다 쓰러져가는 낡은 판잣집에는 할머니 하츠에(기키 기린 분)와 오사무의 아내 노부요(안도 사쿠라 분), 쇼타의 누나 아키(마쓰오카 마유 분)가 기다리고 있다. 가족들은 훔쳐온 식량으로 끼니를 때우며 “샴푸는 왜 잊었냐”는 핀잔까지 건넨다.

영화 ‘어느 가족’(원작명 ‘좀도둑 가족’)은 어느 도시 빈민층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진짜 피가 섞인 가족은 아니다. 제각기 사회에서 만나 우연히 ‘가족의 형태’를 갖춰 사는 공동체의 이야기다. 일본 영화계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2018년 칸 영화제에서 이 작품으로 황금 종려상을 받았다. 실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사회가 등 돌리던 일본 빈곤층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을 휩쓴 뒤 하위 계층의 삶을 다룬 유사 영화로 재조명되기도 했다.
피도 안 섞였는데 함께 사는 이유는
영화는 이들이 어떻게 가족이 됐는지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다섯 명 모두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사실만 보여 준다. 오사무는 건설 일용직으로 일해 수입이 안정적이지 않고, 노부요는 공장에서 쥐꼬리 월급을 받는다. 아키는 유흥업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교과서를 보고 있어야 할 쇼타는 학교 문턱조차 밟지 못한다. 월세를 낼 형편이 안되는 이들에게 하츠에의 집과 연금은 유일한 버팀목이다. 여기에 훔친 식음료와 생필품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이들은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틴다.

‘빈곤’ 계층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경제학에서는 사회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이 있다고 정의한다. 절대적 빈곤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최소한 유지돼야 할 생활 수준을 산정한 금액보다 소득이 적은 경우를 말한다. 세계은행은 절대빈곤선을 하루에 1.9달러(약 2200원)로 정하고 있다. 반면 상대적 빈곤은 소득과 상관없이 각 사회의 공동체 구성원 대다수가 누리는 최소한의 생활 수준을 영위하지 못하는 상태를 뜻한다. 일본의 최저임금을 감안하면 오사무 가족은 절대적 빈곤 상태는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일본 사회 대부분의 사람과 비교하면 영락없는 상대적 빈곤 계층이다.

입에 겨우 풀칠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어느 날 또 한 명의 가족이 생긴다. 여느 날처럼 물건을 훔쳐 돌아오는 길에 발견한 꼬마 유리(사사키 미유 분)다. 이들은 홀로 있던 유리를 잠시 놀아주고 돌려보내려 했지만 집에서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유리를 거둬들여 자식처럼 키우게 된다. 경제적 이익과는 반대되는 선택이었을 뿐더러 사회적으로는 범죄 행위였다. 이들은 사회를 등지고 자신들만의 ‘가족’을 꾸려 나간다.
가족에게 불어닥친 ‘실업’ 태풍
웃음을 잃지 않던 가족에게 불행은 조금씩 스며든다. 오사무는 다리를 다쳐 건설 현장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다. 노부요는 공장에서 권고사직을 당한다. 회사가 어려워져 노부요와 다른 동료 중 한 명만 고용을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평소 친했던 노부요의 동료는 ‘실종된 유리를 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겠다’고 협박한다. 노부요는 유리를 지키기 위해 직업을 포기한다. 가족에게는 고정 수입이 완전히 사라진 셈이다.

이들을 벼랑 끝으로 몬 것은 일자리의 박탈이다. <표>를 보면 실업은 크게 △경기적 실업 △마찰적 실업 △구조적 실업 △계절적 실업 등으로 나뉜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생기는 마찰적 실업을 제외하고는 모두 비자발적 실업이다. 노부요가 공장에서 잘린 것은 경기가 침체돼 일자리가 줄어들어 생기는 경기적 실업에 해당한다. 오사무는 부상으로 인한 실업이었지만, 건설 일용직은 계절에 따라 수요가 달라지는 계절적 실업이 잦은 대표적 일자리 중 하나다.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가족이 추억을 쌓기 위해 바다로 여행을 다녀온 뒤, 하츠에가 눈을 감는다. 그의 죽음이 안타깝지만 사망이 공식화되는 순간 연금이 끊길 게 걱정된다. 이들은 각자 작별 인사를 건넨 뒤 집 앞마당에 하츠에를 묻는다. 마음이 불안해진 오사무의 도둑질도 날로 과감해진다. 구멍가게가 아닌 남의 차 유리를 깨고 비싼 물건과 가방을 턴다. 꼬마인 유리에게까지 도둑질을 가르치는 그의 모습을 보며 회의감을 느끼는 건 쇼타였다. 오사무는 심지어 “이건 워크셰어(work-share)야”라며 행위를 정당화한다. 결국 쇼타는 유리를 지키기 위해 일부러 티나게 물건을 훔쳐 도망가다가 다리를 다쳐 입원한다. 경찰이 출동하면서 이들 가족의 ‘숨겨진 비밀’이 사회에 드러난다. ‘어린 소녀 유괴’와 ‘할머니 암매장’을 저지른 가족의 이야기는 전 언론에 대서 특필된다. 노부요는 죄를 모두 뒤집어 쓴 채 체포된다.

정소람 한국경제신문 기자
NIE 포인트
① 경기적 실업, 마찰적 실업, 구조적 실업, 계절적 실업 등 유형별 실업에 대한 대응책은 무엇일까.

② 우리의 절대빈곤 기준인 ‘최저생계비(2021년 1인가구 기준 월 54만8349원)’와 상대빈곤 기준인 ‘중위소득(전체의 한가운데 있는 가구의 소득)의 절반(91만3916원)’은 적정한 수준일까.

③ 핏줄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혈연관계가 없는 가족은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며, 더 늘어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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