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운영하는 비전펀드로부터 2조원 규모의 투자금을 유치한 이수진 야놀자 대표의 '성공 스토리'가 재조명되고 있다. 찢어지게 가난하던 어린 시절부터 모텔 아르바이트를 하며 야놀자를 설립한 이후 '데카콘 기업'(기업가치 10조원 이상)으로 만들기까지 그의 삶을 따라가봤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숙식 제공' 모텔은 최고의 일터
1978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난 이 대표는 4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6살 때 어머니가 재혼으로 떠나면서 할머니 손에 자랐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될 때까지 기본적인 글자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열악한 교육 환경에 방치됐던 그는 6학년 때 신문배달을 하다가 중앙대 안성캠퍼스에 재학 중이던 형으로부터 무료 과외를 받았다.대학생 형 덕분에 가까스로 학업을 이어간 이 대표는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자신을 키워주던 할머니마저 위암으로 잃는 슬픔을 겪었다. 다시 친척 집에 맡겨지면서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었고 가정 형편까지 어려워져 인문계가 아닌 두원공업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대학은 인하공업전문대를 가고 싶었지만 등록금이 비쌌다. 결국 학비가 저렴했던 천안공업전문대(현 공주대) 금형설계학과에 진학했다.
어렵사리 대학에 가긴 했지만 이 대표는 생활비 때문에 막노동을 했다. 군대 역시 돈을 벌기 위해 프레스 금형 설계를 하는 업체에서 병역특례요원으로 3년간 복무했다. 악착같이 일했던 이 대표는 4000만원이라는 돈을 모았다.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이 대표는 주식을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4000만원을 종잣돈으로 투자를 시작했다. IMF로 경제가 어려웠던 시기, 주식 시장은 연일 폭락을 거듭했고 극도로 혼란한 상황이 이어졌다. 낮에는 일을, 밤에는 주식 투자 관련 서적을 탐독하며 주식판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는 얼마 가지 않아 4000만원을 모두 잃었다.
무일푼 신세로 갈 곳이 없어지자 이 대표는 모텔에서 알바를 시작했다. 숙식 제공이라는 조건에 주저 없이 선택했다. 돈 벌면서 밥도 먹고 잠도 잘 수 있다는 게 그로서는 최고의 일터였다. 이 대표는 청소부터 주방일, 주차관리 등 모텔 관리 전반을 경험했다. 누구보다 성실했기에 1년 만에 알바에서 매니저, 총지배인까지 초고속으로 승진하며 6000만원을 모았다. 하지만 이마저도 샐러드 배달 사업에 손댔다가 실패해 모두 날려버렸다. 녹록지 않았던 세상, 그가 돌아갈 곳은 모텔뿐이었다.
모텔이야기→모텔투어→야놀자닷컴
2000년대 초반 무선인터넷이 일상화되고 다음 포털에 '카페' 문화가 싹텄다. 이 대표는 2002년 '모텔이야기'라는 다음카페를 만들고 그곳에 자신이 아는 모텔 지식을 공유했다. 모텔 알바, 지배인, 모텔용품 납품 업체, 인테리어 종사자까지 카페로 모여들었다. 카페 가입자는 금방 1만명을 넘어섰다. 이 대표는 모텔이야기를 발판 삼아 숙박업 구인구직 및 모텔 용품 거래 중개 사업을 시작했다.사업은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위기가 이어지던 상황에서 이 대표는 '모텔투어'라는 다음 카페 운영자로부터 카페를 인수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당시 모텔투어는 모텔 카페 중 3위 규모를 자랑했다. 이 대표는 고민 끝에 모텔투어를 500만원에 인수했고 1년 만에 회원수 30만명의 대규모 플랫폼으로 성장시켰다.
모텔투어가 대박났지만 사업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상표권 분쟁과 개발 인력 빼가기 등등 순탄치 않는 과정을 겪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좌절하지 않고 모텔투어 대신 2007년 2월 '야놀자닷컴'을 만들었다. 야놀자닷컴은 스마트폰 태동기와 맞물리면서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앱)으로 진화했고, 마침내 대박을 기록하면서 현재 야놀자의 기틀을 닦았다.
야놀자앱 성공으로 이 대표는 그동안 총 3790억이라는 투자금을 유치했다. 이 돈으로 2016년 호텔 타임커머스 플랫폼 '호텔나우'를, 2019년 호텔예약 플랫폼 '데일리호텔' 등을 인수하며 몸집을 키웠다.
조직이 비대해지자 관리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 대표는 부서를 각 분야별로 나눈 다음 외부 전문가를 영입했다. 글로벌 사업과 서비스 고도화를 위해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 출신의 김종윤 당시 부대표(현 부문 대표)도 영입했다.
2019년 연결 매출 3000억원을 달성한 야놀자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여행업계가 극도의 부진에 빠진 지난해 도리어 실적이 늘었다. 야놀자의 지난해 매출액은 1920억원으로, 전년보다 43% 증가했다. 영업이익도 2019년 62억원 손실에서 지난해 161억원 흑자 전환했다.
숙박 회사 아닌 종합 여가 IT 기업으로 재도약
지난 15일 손 회장이 이끄는 비전펀드가 야놀자에 2조원을 투자하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대표가 다음 카페 모텔이야기를 만든지 20여년 만이다. 손 회장이 국내 기업에 투자한 건 쿠팡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업계에서는 이번 투자 유치로 야놀자가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을 넘어 '데카콘'으로 인정받았다고 보고 있다.손 회장이 야놀자에 투자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의외라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정보통신(IT) 기업 외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손 회장의 철학이 깨진 것 아니냐는 추측들이 쏟아졌다. 업계에서는 손 회장이 야놀자를 숙박 회사가 아닌 IT 기업으로 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야놀자는 '테크 올인' 비전을 추진하며 기술 개발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하반기에 300명 이상의 연구개발(R&D) 인력 채용을 계획 중이다. 단기적으로 R&D 인력을 1000명까지 늘리고 중장기적으로 전체 임직원의 70% 이상을 R&D 인재들로 구성한다는 방침이다.
야놀자는 "여행 관련 모든 예약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슈퍼 앱' 위상을 국내 1위에서 세계 1위로 확대할 수 있는 기회"라며 "연간 3000조원 규모의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야놀자는 미국 증시 상장을 위한 절차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지난해 10월 기업공개(IPO) 추진을 공식화했고 이르면 2023년 미국 직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손 회장에게 투자를 받은 김범석 쿠팡 창업자와 이 대표가 자연스레 비교가 되고 상황. 하지만 업계에서는 대기업 주재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서 명문사립학교를 다니고 하버드대를 졸업한 '금수저' 김 대표와 산전수전 다 겪은 '흙수저' 이 대표가 비교 대상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출발 지점부터 달랐다는 것.
모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깨고 음지에 있던 숙박 정보를 양지로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 야놀자가 글로벌 IT 기업으로서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