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이번주 전력수급 비상단계가 발령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정과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전력에 비해 생산되는 전력이 충분하지 않을 때 나오는 조치다. 2013년 8월 이후엔 발령된 적이 없다. 전력 수급이 이처럼 문제가 되는 것은 우선 올여름 폭염 때문이다. 한반도 상공이 뜨거운 공기로 둘러싸이는 ‘열돔(heat dome)현상’이 이어지며 상당수 가정이 밤에도 에어컨을 켜면서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주춤했던 경기가 회복되며 산업부문에서의 전력 수요도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전력 위기의 밑바탕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자리잡고 있다고 보고 있다. 월성 1호기의 수명이 연장되고 신한울 3·4호기가 제때 건설됐다면 전력 부족 우려는 없었을 것이란 지적이다.
전력 사용이 많은 여름철, 겨울철에는 일시적으로 예비력이 1만㎿를 밑돌기도 한다. 하지만 올여름에는 예년보다 훨씬 일찍 경고등이 켜졌다. 지난 13일 예비력은 8800㎿, 예비율은 10.1%에 그쳤다.
정부는 전력공급 예비력이 5500㎿ 밑으로 내려가면 전력수급 비상단계를 발령한다. 1단계(예비력 5500㎿ 미만) 준비, 2단계(4500㎿ 미만) 관심, 3단계(3500㎿ 미만) 주의, 4단계(2500㎿ 미만) 경계, 5단계(1500㎿ 미만) 심각 등이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올여름 전력수급 비상단계가 1~2단계까지 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앞으로 전력 수요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 보고 주요 기업에 수요 조절을 해달라고 요청했다”며 “이번주에 정비를 마친 원전 1기를 추가로 가동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2011년 8월처럼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사태)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이 경우 산업계는 상당한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2018년 불과 30분간 정전 사태로 수백억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전해졌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탈원전을 고수하는 정부의 고집 때문에 에너지 수급 계획이 완전히 뒤틀어져 버렸다”고 지적했다.
원전 출력을 낮추는 방법은 중성자를 흡수하는 붕산을 원자로에 투입하는 방법과 연료 제어봉을 삽입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신고리 3호기는 붕산을 투입해 원자로 핵분열 속도를 조절하는 방법으로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원전의 출력을 갑자기 낮추면 제어가 까다로운 핵분열물질인 제논이 급증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 물질이 계속 쌓이면 과출력 사고 등 예기치 않은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 또한 증가할 수밖에 없다.
원자력업계 관계자는 “원전 도입 초창기인 1980년대 이후 원전 감발은 한 번도 없었다”며 “최근 들어 세 차례나 출력 조절을 한 것은 에너지 수급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원전은 100% 출력을 유지해야 안전하다는 것이 원전업계의 설명이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탈원전 부작용으로 국가적 에너지 재난 사태가 가시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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