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현교 '나는 어디로 가고 있다'展…바닷속 생명이 발하는 아름다움들

입력 2021-07-19 17:05   수정 2021-07-20 00:32

푸른색과 에메랄드색, 보라색이 뒤섞인 몽환적인 색상의 바닷물이 화폭에 넘실댄다. 그 안에 있는 산호초와 해조류들이 이른 봄 돋은 새순의 연두색부터 가을철 낙엽의 울긋불긋한 색까지 저마다 다채로운 빛깔을 뽐낸다. 그 사이를 색색의 작고 둥근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환상적인 바다의 풍경을 그린 채현교의 “나는 ‘어디’로 가고 있다”이다.

서울 청담동 갤러리두에서 중견 작가 채현교(50)의 수채화 등을 소개하는 개인전이 20일 개막한다. 신작 33점을 포함한 근작 36점이 걸렸다. 전시 제목과 작품들의 제목은 모두 “나는 ‘어디’로 가고 있다”로 똑같다. 채 작가는 “1996년 첫 개인전 때부터 지금까지 열 번 넘게 전시를 열면서 전시 및 작품 제목으로 이 문구 하나만 써왔다”며 “보는 이들의 상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같은 제목을 썼다”고 말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건 가로 9.2m, 세로 1.3m의 대작이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수중 풍경이 마치 해양생태관과 아쿠아리움에 들어선 기분을 자아낸다. 수채화 물감을 잘 빨아들이는 코튼페이퍼에 그려 물속 특유의 느낌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다른 작품 대부분은 캔버스에 그린 수채화다. 물감이 잘 발리도록 닥종이풀과 다른 재료로 밑작업을 한 뒤 그린 그림들이다. 이 중에서 잠수정에 난 작은 창 같기도 하고, 생명을 품은 알의 모양 같기도 한 푸른색 타원 속에 바닷속 풍경이 들여다보이는 신작(사진)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타원의 테두리 바깥쪽은 아크릴물감으로 그린 금빛과 은빛의 해초들이 장식하고 있다.

“주로 한밤중에 그림을 그리는데, 어느 날 작업을 하다가 창밖을 내다보니 전과 달리 하늘이 칠흑같이 캄캄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이른 시간에 문을 닫는 가게들이 늘면서 조명이 줄었기 때문이었어요. 팬데믹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지만 인간은 어려움을 겪으며 성장하는 존재입니다. 죽을힘을 다해 자신을 둘러싼 알이나 장벽을 깨고 성장하는 인간의 힘, 그 생명이 발하는 아름다움을 바닷속 풍경으로 표현했습니다.” 전시는 오는 31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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