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탈원전 5년 더 가면…美처럼 조립도 못하는 나라 된다"

입력 2021-07-19 17:42   수정 2022-01-10 08:09


지난 15일 원자력 발전 부품업체 삼홍기계의 경남 창원 공장(사진). 2500㎡ 규모의 공장 내부엔 멈춰선 중장비만 한쪽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2017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탈원전 정책 여파로 2018년 이후부터는 사실상 원전 관련 일감이 모두 끊겼기 때문이다. 이 회사 김승원 부사장은 “원래 원전 부품으로 발 디딜 틈이 없던 곳이었다. 그 공장이 이렇게 됐다”고 했다.

삼홍기계는 그나마 선박 자재를 제조해 최악은 피하고 있다. 이 회사 매출은 2017년 300억원에서 지난해 18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다른 사업이 없는 중소업체는 상당수 문을 닫았다. 김 부사장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부품과 자재만 사라진 게 아닙니다. 4년 동안 원전 관련 인력도 120명에서 40명으로 줄었습니다.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가진 장인(匠人)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니 착잡할 따름입니다.”

정부가 2017년 6월 탈원전을 선포한 이후 4년이 지나면서 원전 생태계가 밑바닥부터 붕괴하고 있다. 세계 1등 기술력을 떠받쳐온 원전 중소기업들은 빈사 상태에 빠졌고, 기술과 노하우를 가진 인력은 원전 현장을 떠나고 있다. 인력 이탈은 수치로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원자력산업협회가 올 4월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원자력 공급 산업체에서 일하는 국내 인력은 2016년 2만2355명에서 2019년 1만9449명으로 13% 감소했다.
脫원전 4년, 무너진 산업생태계…공장엔 녹슨 장비만 덩그러니
미국은 1970년대까지 원전 최강국이었다. 원전 설계부터 시공까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했다. 1978년 미국이 운영하는 원전은 68기로, 세계 전체 원전의 31%를 차지할 정도였다. 하지만 1979년 펜실베이니아주에 있는 스리마일섬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한 이후 미국 정부는 34년간 신규 원전 건설을 모두 중단시켰다. 장기간 새 원전을 짓지 못하게 되면서 한국에 원전 기술을 전수하던 미국은 이제 원전을 짓고 싶어도 혼자서는 짓지 못할 정도가 됐다. 김승원 삼홍기계 부사장은 “미국은 원전 부품을 다 만들어 가져다줘도 스스로는 조립조차 못 할 정도로 원전 생태계가 붕괴된 상태”라며 “한국도 탈원전 정책이 5년만 더 이어지면 미국과 같은 처지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밑바닥부터 무너지는 원전 생태계
원전 핵심 부품 20여 종을 두산중공업에 단독 납품해오다 2018년부터 일감이 끊긴 경남 김해의 세라정공은 최근 해양플랜트 설비를 만들며 기업을 유지하고 있다. 고가의 원전 부품 가공용 설비로 상대적으로 기술 수준이 낮은 해양플랜트 설비를 만들다 보니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김곤재 세라정공 대표는 “이러려고 수십억원씩 들여 장비를 마련한 게 아닌데 고통스럽다”면서도 “탈원전 정책이 폐기될 날을 대비해 기술력을 유지하려면 이렇게라도 계속 공장을 돌려야 한다”고 했다.

세라정공 공장 외부엔 대형 원전 부품을 만들 때 디딤틀로 사용되는 철제 기구가 방치돼 있다. 해양플랜트 설비와는 무관한 장비로 빨갛게 녹이 슨 상태였다. 세라정공은 이미 4억~5억원어치의 디딤틀 기구를 폐기처분했다. 김 대표는 “안전성을 검증받은 세계 최고의 원전 기술이 이렇게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생태계 중심' 대기업도 피해 막심
탈원전 정책이 추진되기 전까지 한국의 원전 설계·시공 능력은 세계 최고로 꼽혔다. 경남 창원 두산중공업 공장을 중심으로 핵심 원전 협력업체들이 클러스터를 구축한 덕택이다. 하지만 탈원전 정책으로 신규 원전 건설이 백지화되면서 두산중공업의 원전 건설 사업은 중단됐고, 자연스레 원전 협력업체들이 두산에 납품할 계약도 사라지게 됐다. 생태계가 더 이상 작동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한국원자력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원자력 공급 산업체의 매출은 2016년 5조5000억원에서 2019년 3조9300억원으로 28.5% 감소했다. 같은 기간 원자력 공급 산업체 종사 인력은 13% 줄었다.

생태계의 중심에 있는 두산중공업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두산중공업의 매출은 별도 재무제표 기준 2016년 4조7100억원에서 지난해 3조3500억원으로 줄었다.

올 1분기 두산중공업의 분기 순이익이 7분기 만에 흑자 전환되는 등 실적이 개선되고는 있다. 하지만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시행한 명예퇴직, 유휴인력 휴업, 친환경 사업으로의 전환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의 결과라는 분석이다.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3월 “원자력·석탄화력발전 프로젝트가 취소되면서 10조원 규모의 수주 물량이 증발했다”고 밝힌 바 있다.
공기업 실적 악화로 원전 수출 먹구름
탈원전 정책은 민간기업뿐만 아니라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등 발전 공기업의 경영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입혔다. 탄소 배출이 가장 적고 발전 단가는 싼 원자력 사용을 인위적으로 줄이는 대신 값비싼 액화천연가스(LNG), 신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전의 부채 비율은 2016년 143.4%에서 지난해 187.5%로 늘었다. 지난해엔 코로나19로 수입 원유 등 발전에 필요한 연료 가격이 급락하면서 일시적으로 실적이 회복됐지만 올해엔 다시 연료비가 상승하고 있어 실적이 악화할 전망이다.

문제는 발전 공기업의 실적 악화가 이어질 경우 전기료 인상 압박이 심해지는 것은 물론 국내 기업의 해외 원전 시장 진출도 어려워지게 된다는 점이다. 원전 같은 대규모 시설은 발전 공기업과 민간기업, 정부가 하나의 팀을 이뤄 해외 물량 수주 경쟁에 나서는데, 공기업 실적이 나빠지면 원전 운영 능력에 대한 대외적 신뢰도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탄소중립 목표가 글로벌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원전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하지만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한국 기업이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창원·김해=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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