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올리브네트웍스는 한 달에 두세 번 타운홀 미팅을 연다. 최대 임직원 1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인다. 2020년 차인혁 대표(55) 부임 이후 생겨난 변화다. 시대 흐름과 비전을 공유하기 위해 마련한 이 자리는 올해만 벌써 17번 열렸다. 일종의 기업 문화가 된 것이다. 이야깃거리는 다양하다. 사내 화장실 변기의 불편함부터 회사 장기 비전까지…. ‘직원들이 생각하는 모든 것’이 타운홀 소통의 주제로 오른다.
‘시대 흐름에 뒤처지면 죽는다’는 절박함이 타운홀 미팅을 거르지 않는 차 대표를 성장시켰다.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30년 넘게 몸담아온 그는 혁신의 흐름에 올라타 짜릿한 성공을 여러 차례 맛봤다. 시대 변화를 쫓아가지 못해 참담한 실패를 겪기도 했다. 업계 안팎에서 그를 혁신 DNA를 품은 ‘도전의 아이콘’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그는 핵심 원천기술을 연구하는 AI 코어 연구소와 원천 기술 상용화를 연구하는 AI DT 연구소를 차리고 연구인력을 세 배 가까이 늘렸다. 차 대표는 “단순히 노동력을 많이 투입해 전산화하는 기업이 아니라 자체 기술력을 갖추고 생태계를 이끄는 기업이 되려고 한다”고 했다.
일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그룹 내부 일보다 외부 일감 수주에 더 힘을 쏟고 있다. 관행을 통째로 바꾸려는 것이다. 차 대표가 집중하고 있는 사업 중 AI스마트팩토리 사업은 피코이노베이션, 화요, 한국야쿠르트 등에서 관련 사업을 수주하는 등 성과가 가시화하고 있다. 외부에서 성과가 나타나니 거꾸로 CJ제일제당, CJ대한통운 등 그룹 내 계열사들의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성과는 서서히 숫자로도 나타나고 있다. 그가 부임하기 전 외부 수주 비율은 10%대 초반이었다. 하지만 이후 1년여 만에 CJ올리브네트웍스의 외부 수주 비율은 20%를 넘어섰다. 목표는 외부사업을 내부사업 규모로 키우는 것이다. 그는 “내부 일감 수주에 안주하는 것은 IT서비스 업체들의 혁신을 더디게 한다”며 “울타리를 넘어 경쟁에 직접 뛰어들어 혁신의 DNA를 구성원에게 심어주고 싶다”고 강조했다.‘안전한 관행’을 넘어서려는 그의 도전은 일시적 이벤트가 아니다. 참담한 실패가 밑거름이 됐다. 그는 1996년 세계적 통신장비회사 루슨트테크놀로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루슨트테크놀로지는 연구인력만 2만여 명에 달하는 거대 글로벌 회사다. 세계에서 가장 앞선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생각에 그는 가슴이 뛰었고 집에 들어가는 날이 없을 정도로 일에 열중했다. 회사도 그의 열정을 알아봤다. 그는 미국 현지인 20여 명을 통솔하는 기술팀장 자리를 꿰찼다. 회사도 가파르게 성장했다. 그가 입사한 1996년 10만 명이던 회사 임직원 수는 2000년 17만 명까지 늘어났다.
성장만큼 하락의 길도 가팔랐다. 소프트웨어가 호령하는 인터넷 시대가 시작되면서, 하드웨어 회사인 루슨트테크놀로지가 밀려나기 시작한 것이다. 17만 명의 루슨트테크놀로지 직원은 3년 새 3만여 명으로 쪼그라들었다. 그 역시 팀원들과 함께 직장을 떠나야만 했다. 차 대표는 “퇴보하는 기술을 붙잡고 변해가는 시대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며 “열정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했다.
두 번째 회사인 인터디지털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기술 특허 전문회사인 인터디지털에서 그는 특허 기반 사업을 하는 신사업부 기술 팀장을 맡았다. 그의 팀은 통신 안테나를 모바일용으로 소형화한 ‘스마트 안테나’를 개발하는 혁혁한 성과를 냈다. 하지만 지속가능할 듯했던 성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세계적인 스마트폰 공급 과잉으로 스마트 안테나 값이 폭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함께 일하던 70여 명의 직원 중 대부분이 일자리를 잃었고 단 4명만이 남았다.
그는 “내 손으로 뽑은 사람들이 줄줄이 떠나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게 너무 참담했다”며 “내 업무를 아무리 훌륭히 소화해도 세상의 변화와 흐름을 둘러보지 않는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그의 시야가 한층 넓어진 계기다.
그가 한국으로 오게 된 계기도 이와 무관치 않다. 삼성SDS에서 그에게 신사업 기술팀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해왔다. 사내 벤처를 만들고 다양한 신사업 거리를 발굴하는 부서였다. 새로운 도전에 목말랐던 그는 거리낌 없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는 50명에 가까운 팀원과 수십 개의 신사업 아이템을 발굴하고 검토했다. 전자칠판사업부터 배달 서비스 플랫폼 등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고 고민했다. 차 대표는 “세상의 다양한 측면을 보고 경험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기였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그는 늘 “누군가는 혁신의 씨앗을 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당장의 이익보다 지속가능한 혁신이 궁극적 목표다. 최근 인사혁신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차 대표는 데이터마케팅 사업 담당으로 하재영 상무(37)를 영입했다. CJ가 외부에서 영입한 최연소 임원이다. 차 대표 부임 이후 6%에 불과했던 여성 팀장 비율도 20%로 늘어났다. 차 대표는 “차별 없는 인사로 혁신을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이 미래를 이끌게 될 것”이라며 “그래야 CJ올리브네트웍스의 혁신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부 파트너와 협업 넓히는 '차인혁號'
CJ올리브네트웍스는 지난해 5월 생산 자동화 설비 제조회사 러셀과, 12월엔 인공지능(AI) 머신비전을 생산하는 코그넥스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그 결과 세 회사는 공동으로 올해 국내 100여 개 제약사로 구성된 전국 협동조합 피코이노베이션의 스마트 물류센터 구축 사업을 수주했다. 스마트 물류센터는 자율 이송 로봇, 자동창고, 무인운반차, 상·하차 반자동화 설비, 셔틀, 자동분류 소터 등 무인화로 운영 가능한 자동화 설비가 적용된 최첨단 물류창고다. CJ올리브네트웍스 관계자는 “차 대표는 소프트웨어(SW) 시스템 구축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외부 기업과 협력해 하드웨어 역량 또한 강화해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초에는 LG전자와 협력했다. 두 회사는 개인화 식품·레시피 추천 AI 기술 ‘레시픽(Recipick)’을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1’에서 선보였다. 냉장고 안에 있는 식재료와 냉장고에 축적된 이용자의 데이터를 조합해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레시피(요리법)를 추천하고 이와 어울리는 식품을 제안하는 기술이다. CJ제일제당의 제품 및 레시피 데이터와 LG전자의 스마트 냉장고를 연결해 콘텐츠를 개발하고 기술을 검증했다.
지난해 10월 삼성전자 미래기술 사업화 벤처조직인 스타랩스와 인공인간 분야 사업 협력을 위해 업무협약(MOU)을 맺기도 했다. 인공인간 ‘네온’의 AI 기술 공동협력, 인공인간 기반 미디어 사업협력, 인력 양성 등에서 협업하기로 했다.
차 대표는 “앞으로도 수많은 기업과 협업해 나눌 수 있는 것은 나누고 배울 수 있는 것은 배울 것”이라고 말했다.
■ 차인혁 대표는
△1984~1990년 서울대 전자공학 학사·석사
△1990~1995년 펜실베이니아대 전자공학 박사
△1996~2003년 루슨트테크놀로지 벨랩스 기술팀장
△2006~2008년 드렉셀대 MBA
△2011~2016년 삼성SDS 애널리틱스 사업팀장(상무)
△2019년 CJ주식회사 디지털혁신TF장
△2020년~CJ올리브네트웍스 대표·CJ그룹 CDO 겸직
구민기 기자 ko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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