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점에서 중소기업의 고통과 호소를 외면하는 듯한 요즘 여권의 모습은 생경하기 이를 데 없다. 주 52시간제 확대 시행에 최저임금 5.1% 인상,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등에서 중소기업 배려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 영업제한과 최저임금 급등으로 ‘다 죽게 생겼다’는 자영업자들의 시위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원천봉쇄할 정도다.
그런데 가만히 다시 보자. 누가 을이고, 누가 병인가. 한 중소기업인의 말이 힌트다. 그는 “이번에 최저임금이 안 올랐어도 어려움은 여전할 것”이라고 했다. 대기업이 최저임금 동결에 따른 원가 절감 부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하라고 압박해올 게 뻔하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은 한쪽에선 최저임금 급등, 다른 한쪽에선 ‘납품단가 후려치기’ 같은 대기업 갑질로 모두 피해 보는 입장이란 얘기다. 그러면 답은 뻔하다. 지금 정부에선 노동자가 갑, 대기업이 을, 그리고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는 병인 셈이다.
마침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공약으로 ‘공정성장’을 내세웠다. 하청기업은 납품단가의 적정한 산정, 대리점·가맹점·소상공인은 카드사 수수료 인하 등을 요구할 수 있는 단체협상권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이 실패한 것은 최저임금 등에서 자영업자와 노동자의 싸움만 부각됐기 때문이란 진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마치 ‘너희들 적(敵)은 대기업이야. 서로 싸우지 말고, 대기업에 딴지 걸어’라고 코치하는 것 같다. 갈등 프레임을 바꿔 ‘물타기’ 하려는 이재명식 정치 감각이 또 발휘됐다.
문 정부 4년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권익 보호 노력이 없진 않았다. 대형마트 영업제한, 특수고용직 노동자 고용보험 추진, 대·중소기업 납품단가 조정협의제 등이 그런 예다. 하지만 중소기업인의 절반 가까이는 납품단가 압박이 여전하다고 호소한다. 원가 상승분을 자동 반영해주는 ‘납품단가 연동제’ 주장의 배경이다. 이제는 이런 세심한 정책 개선 노력을 배가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 때다. 만악의 근원이 대기업이라며 불만의 화살을 이들에게 돌리라는 식의 선동이 아니라, 더욱 세련되고 실행 가능성 높은 상생(相生)과 협력 방안을 찾아야 한다. 친(親)노조 정부를 맞아 사실상 노동자들이 갑이고, 강자가 된 시대에 과거처럼 노조 편만 들 때는 아니지 않은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