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4호선 명동역 6번 출구 앞. 오랫동안 명동 상권을 대표했던 밀리오레와 CGV 건물 1층은 지금 모두 비어 있다. 우리은행 명동금융센터까지 이어지는 명동8길은 점포 세 곳 중 두 곳꼴로 문을 닫았다. 단골이 많은 유명 노포(老鋪)마저 버텨내질 못하고 있다. 서울미래유산으로 등록된 비빔밥집 ‘전주중앙회관 명동점’은 지난해 폐업했고, 중소벤처기업부 백년가게에 선정된 ‘금강 보글보글 섞어찌개’는 기약 없는 휴업에 들어갔다.
외국인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 없던 명동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가장 심각하게 무너진 상권이 됐다. 전국 최고 수준의 공실률이 이를 보여준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 1분기 명동 중대형 상가(3층 이상) 공실률은 38.4%로 전국 평균(13.0%)의 세 배에 달했다. 지난해 4분기엔 22.3%였는데 올 들어 더 높아졌다.
공실은 말 그대로 비어 있는 방 또는 집을 뜻한다. 공실률은 상가, 오피스 빌딩 등의 상업용 부동산에서 임대되지 않고 비어 있는 공간의 비율을 가리킨다. 공실률은 경기에 크게 영향을 받는 지표 중 하나로 꼽힌다. 경기가 좋을 때는 새로 창업하거나 사무실을 늘리려는 수요가 많기 때문에 공실률이 하락한다. 반대로 경기가 나빠지면 폐업이나 사업 축소가 이어지면서 공실률이 상승한다. 관련 업계에서는 통상 공실률이 10%를 넘어가면 상황이 좋지 않다는 신호로 해석한다.
대표적 대학가 상권 중 하나인 신촌역 일대에서도 골목마다 두세 개꼴로 ‘임대’라고 적힌 건물을 볼 수 있다. 원격수업이 장기화하면서 음식점과 술집 매출이 반토막 난 영향이다. 강남역과 신논현역을 잇는 강남대로 역시 불황을 피해가지 못했다. 코로나 사태 전 이 지역에서 가게를 차리려면 1~2년간 ‘대기’를 해야 했지만 그런 풍경은 사라졌다.
코로나 4차 대유행이 현실화하면서 공실률 고공행진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과거 수억원에 달하던 권리금을 아예 안 받겠다고 해도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없어 수개월째 공실인 점포가 적지 않다. 권리금이란 상가에서 새로 장사하려는 사람이 고객, 시설, 영업 노하우 등을 넘겨받는 대가로 기존 임차인에게 지급하는 돈이다. 건물주에게 내는 임차료와 별개로 세입자끼리 주고받는 일종의 자릿세다. 장사가 잘되는 곳이어야 권리금이 붙는다.
경기와는 무관하게 빌딩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 공실률이 높게 나올 때도 있다. 엄청나게 큰 랜드마크 빌딩이 들어섰는데 주변에 유동인구와 임대 수요가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다면 한동안 상당한 수준의 공실을 감수해야 한다. 서울의 대표적 초고층 빌딩인 여의도 IFC 빌딩, 잠실 롯데월드타워 등이 완공 이후 빈 사무실을 채우느라 애를 먹은 전례가 있다.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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