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신보험은 생명보험의 근간이 되는 상품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다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민원으로 인한 대중의 뭇매까지 맞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특히나 젊은 층으로부터 불만이 높습니다. 가장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고 다른 생명보험상품으로 확장될 가능성도 높은데에도 말입니다.
종신보험은 소액의 보험료를 거둬 높은 보험금을 지급하는 용도의 보장성보험으로 규정됐습니다. 이러니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병폐입니다. 보장성보험이란 기본적으로 중도해약이나 만기 때 돌려받는 환급금이 그때까지 낸 보험료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설계되는 보험입니다. 보험회사는 보장성보험의 요건을 충족시키려고 저축성보험에 비해 위험보험료와 사업비의 비중이 커지도록 상품을 만듭니다. 이렇다 보니 당연히 저축이라는 측면에서는 효율성이 떨어지게 됩니다. 중도에 연금으로 전환할 수 있는 보험료적립금의 액수도 처음부터 연금에 가입했을 경우보다 적어집니다.
일각에서는 종신보험에 가입하면 무조건 손해이니 가입하지 말라고들 떠들어 댑니다. 오랫동안 보험료를 받는 만큼 이익이 크게 나는 상품이어서 보험사가 판매에 열을 올린다고도 합니다. 또는 늦은 나이에 보험에 가입할 때 부과되는 아주 높은 보험료까지 다 넣어서 계산하므로, 보험료가 쓸데없이 비싸다고도 합니다. 생명보험의 기본적인 원리나 종신보험의 특성조차 알지 못하는 소위 '보험전문가'의 무지와 편견의 소치입니다. 이로인해 소비자들은 종신보험을 더욱 불신하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종신보험은 전형적인 장기상품입니다.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생명보험이 제공하는 저축과 보장의 기능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독보적인 금융상품입니다. 독특한 특성 덕에 종신보험은 개인의 장기적인 재정 설계를 위한 기본적인 틀로 매우 유용합니다. 정책적인 배려에 힘입어 많은 나라에서 절세가 가능한 중요 투자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종신보험이 커다란 재산의 축적이나 승계가 필요한 부자들만을 위한 도구는 결코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처럼 엄청난 상속·증여세가 부과되는 환경에서는 아주 유용한 수단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보통 사람에게 더 큰 효용을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유사시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정도의 유산을 남겨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같이 급변하는 환경에서 종신보험의 역할과 성장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 줄 생명보험의 혁신은 종신보험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종신보험의 변신을 통해 다른 금융상품에 대한 경쟁력을 갖추게 됐고, 생명보험의 영역은 확대되었습니다. 생명보험상품의 근간인 오래된 고정관념을 타파함으로써, 새로운 환경에 맞추어 보험의 요소들을 특화하는 혁신이 종신보험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가능합니다.
종신보험에서 저축과 보장의 요소가 분리될 수 있다고 생각을 바꾸면서 변액보험이나 유니버설보험도 만들어졌습니다. 다른 금융기관의 투자형 금융상품에 비해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생명보험상품의 탄생은 요율 산정요소 가운데 가장 변동이 심하고 외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금리 변화에 생보사들이 다양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예를 들어 '불확정보험료 종신보험'에서는 작년 경험치, 아니면 내년 예상치를 기준으로 결정된 예정이율을 적용해 매년 보험료를 새롭게 산정해 가입자에게 부과합니다. 이중 보험료 구조를 가진 종신보험에서는 부과될 보험료의 상한과 하한, 즉 적용되는 예정이율의 최고치와 최저치를 예측하여 미리 정해 놓습니다. 다만 생명보험상품을 다양하게 설계하려면 서구에서 말하는 '요율 자율화'가 필수적입니다. 자율화란 단순히 요율에만 국한되지 않고 회사에 축적되는 저축이나 투자분도 보험회사가 의도한 대로 결정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생명보험산업이 침체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환골탈태해야 합니다. 우선 종신보험을 보장성보험이라는 올가미에서 풀어주어야 합니다. 종신보험에 가입했다가 돌려받는 돈이 낸 돈보다도 적다면, 일단 저축기능은 없는 절름발이 상품이 됩니다. 생명보험산업의 발전을 원한다면 우리의 알량한 지식으로 종신보험 더 나아가서는 생명보험이 무엇이고 어떻게 운영되어야 한다고 예단하거나 규제해서는 안 됩니다. 현재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고 미래 고객의 필요마저도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금융상품으로서의 무한한 변신이 가능하도록 허용되어야 합니다. 실질적인 규제 측면에서 분명히 한계가 있겠지만, 이제는 적어도 다른 나라에서 하는 만큼은 많은 분야에서 자율성이 허용되어야 합니다. 더불어 생명보험에 주어지는 세제 혜택의 기본 틀과 방향이 재설정되어야 합니다. 복지국가가 책임져야 할 최소한의 보장과 저축을 개인이 스스로 해결하는 노력에 대한 보상이 세제 혜택이라는 사실이 반영되어야 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김두철 상명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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