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자가당착에 빠진 신재생에너지 정책

입력 2021-07-22 17:30   수정 2021-07-23 00:08

“국토의 6%를 태양광 패널로 뒤덮겠다는 건 판타지 소설 같은 얘기입니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최근 기자와 만나 정부가 탈(脫)원전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허무맹랑한 에너지 전환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현재 정부가 마련 중인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초안)’는 기존 원전·석탄발전을 모두 폐지하고, 태양광·풍력 발전량을 2018년 대비 54배로 늘린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정부는 2050년 발전량을 1235.3TWh로 본다. 이 수요를 맞추기 위해선 태양광과 풍력 발전설비가 최소 510GW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태양광 패널로 전 국토의 6.1%를 뒤덮어야 가능한 수치다.

하지만 이 계산은 정부가 밝힌 신재생에너지 시장잠재량을 무려 76GW나 초과한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에너지공단이 발간한 ‘2020 신재생 에너지백서’는 태양광(369GW)과 풍력(65GW) 발전설비의 시장잠재량을 434GW로 적시했다. 시장잠재량은 국토 면적과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최대치로 확장할 수 있는 설비량을 의미한다.

이처럼 신재생에너지를 졸속으로 확대할 경우 크게 세 가지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첫 번째는 막대한 비용 문제다. 이종호 전 한국수력원자력 기술본부장은 최근 양심선언을 통해 탈원전 정책을 고수하면 설비 확충 비용으로 2050년까지 1400조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태양광·풍력 설비는 20년마다 교체가 필요해 비용이 반복적으로 투입된다. 발전 비용 상승은 전기요금 인상으로 직결된다.

두 번째는 에너지 수급의 불안정성이다. 신재생에너지는 날씨 편차에 따라 에너지 공급량이 들쭉날쭉하다. 전력 생산과 소비 균형이 깨지면 대정전의 재앙이 발생할 수 있다.

세 번째 에너지 설비의 해외 의존도 심화를 간과할 수 없다. 한국은 국토가 좁고, 바람도 강하지 않아서 지리적으로 신재생에너지 생산에 불리한 환경을 갖고 있다. 주요 부품도 대부분 수입해서 쓰고 있다. 획기적인 기술 혁신이 수반되지 않은 신재생에너지 확대는 에너지 주권을 위협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6월 “원전 중심의 발전 정책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가겠다”며 탈원전 기조의 에너지전환 목표를 설정했다. 하지만 에너지 전문가들은 “에너지전환 계획은 탈원전이 아니라 탈탄소가 핵심”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탈탄소 시대 구현을 위해 가용한 모든 자원과 기술을 동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 세계 주요국이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탈원전이 아니라 오히려 원전 확대 정책을 속속 채택하고 있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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