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출간돼 17주 연속 슈피겔 베스트셀러 최상위권 목록에 올라 있는 책 《의무에 대하여(Von der Pflicht)》의 인기는 독일이 왜 철학의 나라라고 불리는지 알려주는 가장 분명한 증거다. 독일에서 가장 주목받는 철학자이면서 현대 독일 철학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는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맞이해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딜레마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그가 내놓은 철학책으로는 이례적으로 독일에서만 100만 부 넘게 팔렸고 세계 32개 언어로 번역된 《나는 누구인가?》를 비롯해 《세상을 알라》《너 자신을 알라》《사냥꾼, 목동, 비평가》 등 출간하는 책마다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에 프레히트는 발 빠르게 《의무에 대하여》를 선보이면서 ‘시민으로서의 의무’와 ‘소비자로서의 권리’가 충돌하고 있는 코로나19 시대 세태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하던 지난해와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올해, 세계 곳곳에서는 주목할 만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바이러스는 수면 아래 감춰져 있던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의 민낯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이로 인한 갈등이 여기저기서 표출되고 있다. 대다수 사람이 사회적 약자와 감염병에 취약한 계층에 동정과 공감의 감정을 느끼지만, 일부 소수는 감염병 환자와 피해자들을 위한 국가 예산 지출에 불만을 제기하며 시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정부 조치에 반발하기도 했다. 지금도 여전히 갈등과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프레히트는 지금이야말로 시민을 위한 복지국가의 의무는 무엇인지, 국가를 위한 시민의 의무는 또한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하고 긴박한 시점이라고 역설한다.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인 우리는 국가에 어떤 빚을 지고 있는지, 우리를 향한 타인들의 권리는 무엇인지 질문할 좋은 기회다. 국가와 시민의 역할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다 보면 정체성의 딜레마와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자신을 스스로 복지국가 체제에서 연대해야만 하는 시민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또한 동시에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이기적인 소비자로도 인식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정체성은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지난 2년간 우리가 겪어야만 했던 대혼란과 위기는 모든 시민에게 국가와 타인을 향한 의무가 필요한 이유를 분명하게 알려주는 생생한 수업이었다. 권리와 의무, 그리고 자유와 책임. 이 책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균형감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두 날개를 강조한다. 의무 없는 권리는 불가능하고, 책임 없는 자유는 환상일 뿐이다!
홍순철 <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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