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카드' 받으면 바로 퇴출?…상장폐지, 자세히 뜯어보니[류은혁의 기업분석실]

입력 2021-07-25 06:39   수정 2021-07-25 06:40



스포츠 경기에서 파울에 따른 경고와 퇴장이 있듯이 주식시장에서도 파울(위반) 범위에 따라 한국거래소로부터 여러 제재를 받는다. 이 중 상장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조치는 '상장폐지'다. 상장사 입장에선 '사형선고'와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상장폐지 요건에 준하는 반칙을 했다고 곧바로 시장에서 퇴출되는 것은 아니다. 투자주의 환기종목과 관리종목 지정이란 경고차원의 조치도 있지만 이번 내용에선 '상장폐지 제도'에 대해 살펴볼까 한다.

거래소는 2009년 문제가 있는 부실상장기업들에 대한 퇴출을 강화하기 위해 상장폐지 실질심사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매출액이나 시가총액 미달 등 양적 기준이 아닌 매출 규모 부풀리기나 횡령, 배임 등 질적 기준에 미달하는 상장사를 심사해 시장에 퇴출시킨다.

실질심사는 유가증권시장에선 2심제(거래소→기업심사위원회), 코스닥시장에선 3심제(거래소→기업심사위→코스닥시장위원회)로 이뤄진다. 거래소가 실질심사 대상으로 정하면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한다.
최종 상장폐지 결정, 얼마나 걸리나
만약 실질심사 과정에서 상장유지에 부적합한 것으로 판정된 후 회사 측의 이의신청이 없으면 해당 기업은 상장폐지 절차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지만 회사 측이 이의를 제기하면 거래소 상장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상장폐지 여부가 결정된다. 즉, 상장폐지여부는 실질심사위원회가 아니라 상장위원회에서 결정하게 된다.

거래소의 상장폐지 결정에 이의가 있으면 해당 회사는 통지일로부터 7영업일 이내에 이의를 신청하고, 거래소는 그로부터 15영업일 이내에 상장위원회를 열어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한다.

코스닥 상장사의 경우 기업심사위가 상장폐지로 결론 내면 코스닥시장위원회가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서도 상장폐지 혹은 개선 기간 부여 여부를 심의·의결한다. 코스닥시장위가 상장폐지로 의결해도 끝은 아니다. 회사 측이 이의신청을 하면 코스닥시장위의 심의가 다시 열린다.

이 과정에서 개선기간이 부여되면 상장폐지 최종 결정은 뒤로 밀린다. 개선기간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1회 부여 시 1년을 넘지 않으며, 기심위와 시장위의 부여 기간이 도합 2년을 넘지 않는다. 따라서 최종 상장폐지 결정까지는 최장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수 있다.
회계법인 감사인은 저승사자?
사실 부실 징후가 있는 상장사 입장에선 회계법인 감사인들이 '저승사자'로 보일 것이다. 회계처리기준 위반이나 자본잠식, 횡령·배임 등 상장폐지를 결정하는 주된 사유가 감사인의 감사의견 거절로 인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감사보고서는 외부감사인의 '감사의견'이 들어가기 때문에 사업보고서에 필수적으로 첨부돼야 한다. 따라서 감사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의미는 제한내 사업보고서를 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며,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상장기업들은 사업연도 경과 후 90일 이내에 감사의견이 포함된 사업보고서를 금융위원회와 거래소에 제출해야 한다. 통상 12월 결산법인의 경우 매년 3월 말까지는 내야 한다는 의미다.

'감사의견 거절'은 해당 기업들이 이의신청을 하더라도 구제되는 경우가 드물어 사실상 퇴출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래서 '감사보고서 제출 지연' 공시는 소액주주들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들기도 한다.

상장사들은 외부감사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회계감사가 완료되면 최종적으로 '감사보고서'를 내게 된다. 감사보고서 안에는 '적정' '한정' '부적정' '의견 거절' 총 네 가지로 감사 의견이 담기게 된다. 감사보고서상 '한정' 의견을 받거나 반기보고서상 '부적정' '거절' 의견을 받는 경우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다만 감사보고서상 '부적정' '거절' 의견을 받거나 2년 연속 '한정' 의견을 받으면 이 역시 상장폐지 사유에 해당한다.

회사가 상장폐지하면 투자자의 손실은 줄어들까. 사실 투자자도 어차피 주주다. 회사가 사라지면 손해는 불가피하다. 사실 거래소도 난처한 입장이다. 상장을 승인시켜놓고 다시 상장폐지를 결정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다.
빠른 퇴출? 개선기간 보장?
부실한 상장사를 처리하는 데에는 되도록 빨리 상장폐지 시키는 것과 반대로 개선하도록 시간을 보장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전자는 투자자 보호에, 후자는 기업(주주 포함) 입장에 중점을 뒀다. 즉 상장폐지를 미루면 투자자가, 서두르면 기업이 각각 피해를 볼 수 있다.

한때 코스닥시장 시가총액 2위까지 올라섰던 신라젠의 소액주주들은 피 말리는 나날을 보냈다. 신라젠은 상장 4년도 안 돼 퇴출의 갈림길에 섰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문은상 전 대표 등 전·현직 임원들의 횡령·배임 혐의가 발생함에 따라 상장 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으로 결정됐다. 다행히 개선기간 부여됨에 따라 투자 유치 등 경영정상화로 상장폐지 위기에선 벗어나는 모양새다. 개선기간이라는 시간이 주어짐에 따라 상장폐지 위기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렇다고 주주들의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과정에서 소액주주들은 행여 상장폐지될까 속이 타들어가는 경험을 했다. 특히 주식거래 정지 등으로 소액주주들의 피해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상장적격성 실질심사는 상장회사로서 적격한지를 심사하는 제도다. 거래소가 특정 기업의 주식의 거래를 정지시키고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절차에 들어갈 경우 15거래일 이내에 실질심사 대상인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상장폐지,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사실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후자 쪽인 기업 입장에 무게가 더 실려 있었다. 당시 한국거래소 상장폐지규정을 보면, 상장법인에 상장폐지 요건이 발생하더라도 사안에 따라 2~3년 유예기간을 두고 경과를 지켜봤다. 자본잠식이나 감사의견이 3년 연속으로 발생해야 관리종목으로 지정했고, 관리종목 지정 3년이 지난 후에야 상장을 폐지했다.

하지만 시간을 줘도 부활하지 못하는 기업은 있기 마련이다. 당시 일각에선 거래소의 방치로 투자자들의 피해가 더 커지고 있다는 주장이 일었다. 이에 2000년부터 거래소는 관리종목 지정과 상장폐지 기준을 강화했다. 감사의견 부적정이나 의견거절, 자본잠식 등이 발생하면 즉각 관리종목으로 지정하도록 했다.

관리종목 지정 이후 상장폐지까지 유예기간은 6개월에서 1년으로 줄었다. 종전 2~3년보다 최대 6배까지 단축한 것이다. 이밖에 공시의무 위반으로 벌점이 쌓이는 것도 상장폐지 사유로 등장하는 등 투자자 보호에 중점을 뒀다.



2009년 상장폐지제도는 상장 적격 실질심사제도가 도입되면서 더욱 강력해졌다. 횡령 및 배임 발생 등 회계부정 사유가 있으면 상장 적격성을 따질 수 있도록 했다.

일각에선 상장폐지를 두고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기업들은 상장심사라는 까다로운 문턱을 넘고 주식시장에 입성한다. 만약 불미스러운 일로 퇴출 당하게 된다면 이만큼 치욕스러운 일도 없다. 특히 향후 자금조달이나 회사 경영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거래소 입장에서도 상장폐지는 반갑지 않은 상황이 연출된다. 당연히 주주 등 투자자들도 손해를 입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처럼 상장폐지는 그 누구도 웃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하지만 이미 회생 기미가 희박한 기업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도 시장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부실 기업을 방치할 경우 자칫 주가 부양이나 머니게임에 휩쓸리면서 전체 시장을 흐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상장폐지 제도를 강화하는 것 만이 능사가 아니다"면서 "상장폐지는 결국 관계된 모든 이들의 불행을 만든다. 상장사들에게서 부실이 일어나기 전에 관리·감독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더욱 필요하다"고 말했다.

류은혁 한경닷컴 기자 ehry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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