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제 MBC 사장이 직접 90도로 고개를 숙였지만, 외교 문제까지 번진 논란을 발생시킨 일부 인원이 여전히 올림픽 중계방송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박 사장은 26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앞서 문제가 됐던 2020 도쿄올림픽 개회식과 축구 중계방송 자막에 대해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방송을 했다"며 "신중하지 못한 방송으로 상처 입은 해당 국가 국민과 실망한 시청자에게 콘텐츠 최고 책임자로서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MBC는 지난 23일 진행된 도쿄올림픽 개회식 방송에서 각 국가 선수를 소개하면서 자료 이미지로 우크라이나에 체르노빌 이미지를 사용했다. 또 엘살바도르에는 비트코인 사진, 아이티에는 '대통령 암살로 정국은 안갯속'이라는 설명과 함께 내전 사진을 사용했다.
뿐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선수단이 입장할 땐 마약의 재료가 되는 양귀비를 운반하는 이미지를 쓰고, 미셜 군도 소개로는 '한 때 미국의 핵실험장'이라는 문구를 삽입했다.
여기에 지난 25일 한국과 루마니아의 올림픽 국가대표팀 축구 경기에서 루마니아의 자책골이 들어간 후 '"고마워요 마린" 자책골'이라는 자막을 사용했다. 지상파 방송사인 MBC에서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SNS 뿐 아니라 외신들도 MBC의 방송 내용을 보도하면서 '무례한'(disrespectful), '모욕적인(offensive)'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특히 CNN은 MBC의 중계방송에 대한 SNS 반응을 전하면서 "한국을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세월호 참사의 나라로 소개하면 좋겠나"라는 글을 소개하기도 했다.
국제적인 망신을 당한 후 박 사장은 "지난 주말은 MBC 사장 취임 후 가장 고통스럽고 참담한 시간이었다"며 "1차 경위를 파악하니 기본적인 규범 인식과 검수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 철저하게 원인을 파악하고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이어 "대대적인 쇄신 작업에 나서겠다"며 "내부 심의 규정을 강화하고, 윤리위원회, 콘텐츠 적정성 심사 시스템을 만들어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사장이 밝힌 문제 파악과 쇄신 시스템 가동은 올림픽이 끝난 이후에 진행된다는 점에서 재발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 특히 MBC는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도 키리바시에 "지구온난화로 섬이 가라앉고 있음", 짐바브웨에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차드에 "아프리카의 죽은 심장"이라고 소개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중징계인 '주의' 조치를 받았다.
MBC에서 거듭 다른 나라를 비하하는 표현이 등장해 논란이 되는 것에 대해 박 사장은 "그런 부분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조사가 필요하다"면서도 "1차 조사는 마무리됐지만, 올림픽이 끝난 후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취재진이 문제가 된 제작진이 여전히 중계방송에 참여하고 있는지 묻자 "일부는 조사를 받았고, 일부는 일을 하고 있다"며 "경중에 따라 배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직 중계방송이 진행되는 과정"이라고 강조하면서 "올림픽이 끝나는 대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방송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만들 것"이라고 전했다.
MBC에서 반복적으로 논란 상황이 발생하는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올해 초 MBC가 스포츠국 조직개편을 진행한 것 때문이 아니겠냐는 분석이 나왔다. 올림픽을 불과 6개월 앞두고 조직개편이 이뤄졌고, 이로 인해 자막과 영상 등에 대한 제대로 된 데스킹이 이뤄질 수 없었다는 것.
조직개편 소식이 알려졌을 당시 MBC 스포츠국 구성원들은 성명서를 통해 "도쿄올림픽을 시작으로 동계올림픽, 아시안게임, 월드컵 등 줄줄이 이어지는 빅이벤트들을 준비조차 못 하는 경영진의 '찔러보기'식 접근은 MBC의 경쟁력 약화를 조장한다"고 우려를 표했지만, 경영진은 비용 절감을 이유로 부서 재배치를 감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사장은 "(데스킹) 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이 문제를 거론하는 건 좋지 않다. 정밀한 조사를 더해서 확실한 책임소재와 재발 방지대책까지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또 "조직개편으로 갈등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면서도 "이게 원인이라는 것엔 동의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올림픽 중계를 본사와 자회사가 함께 하고 있는 건 맞다"면서도 "본사, 계열사 어느 한쪽에 책임을 물을 일도 아니고, 기술적인 문제도 아니다"며 "(원인은) 제대로 된 규범과 인식이 미비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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