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의 공립 공예박물관인 서울공예박물관이 지난 16일 옛 풍문여고 자리에 문을 열었다. 서울시가 2017년 땅을 매입한 뒤 4년간의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새롭게 단장했다. 지난 15일로 예정됐던 개관식은 코로나19 확산으로 무산됐지만, 관람 열기는 조용하면서도 뜨겁다. 조아라 공예박물관 주무관은 “홈페이지를 통해 하루에 6회차, 회차당 90명까지 사전 예약해야 관람할 수 있는데 거의 매일 예약이 꽉 차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눈에 띄는 소장품은 국가지정문화재인 조선시대 공예품 4점이다. 조선 후기 유물인 ‘자수 가사’(보물 제654호)는 자수를 놓은 법의(法衣)다. 현존하는 20여 점의 가사 유물 중 전체에 수를 놓은 유일한 가사다. 부처와 보살, 경전과 존자 등이 다양한 기법으로 화려하고 아름답게 수놓여 있다. 오조룡왕비보와 운봉수향낭, 일월수다라니주머니도 자수의 정교함과 품격이 감탄을 자아낸다.
6개 동(棟), 8개 관(館)으로 구성된 박물관에서는 총 8개의 상설전과 기획전시가 열리고 있다. 전시 3동에서 열리는 ‘자수, 꽃이 피다’와 ‘보자기, 일상을 감싸다’ 전이 시선을 끈다. 한국자수박물관을 설립한 허동화(1926~2018)와 박영숙(89) 부부가 기증한 컬렉션 5000여 점 중 엄선한 작품을 2개 층에 걸쳐 선보이는 전시다.
이곳에서는 연꽃과 매화 등 각 계절을 상징하는 분재가 수놓인 4첩 자수병풍 자수사계분경도(보물 제653호)를 만날 수 있다. 고려 말기에 만든 작품인데 현존하는 자수 유물로는 가장 연대가 오래됐다. 실물 앞에는 문양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촉각 관람 전시물’이 놓여 있다.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자수가 새겨진 골무나 보자기 등 일상용품도 전시장에서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2층 ‘장인, 세상을 이롭게 하다’는 5세기 가야의 손잡이 잔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공예의 역사를 아우르는 전시다. 고려시대 금속공예품인 청동 항아리, 통일신라의 인화무늬 합, 나전칠기와 삼층장 등 여러 시대의 공예 유물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 중 고려 나전경함(螺鈿經函)을 재현한 작품은 김의용·손대현·정명채·박문열 등 각 분야 장인들이 2년간 협업해 만든 걸작이다. 잣나무로 뼈대를 만드는 과정부터 자개를 붙이고 문양을 표현하는 데까지 전 과정을 재현했다.
‘공예, 시대를 비추다’ 코너는 근대 산업으로서의 공예가 시작된 일제 강점기에 주목하는 전시다. 명동 미쓰코시백화점에 유명 장인의 공예품이 전시돼 있던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 명동 조지야백화점이 VIP 고객 선물용으로 마련했던 동태 나전칠 구름용무늬 화병 등이 나와 있어 흥미를 끈다. 이 밖에 어린이와 가족을 위한 체험형 전시 ‘공예마을’ 등 다채로운 볼거리가 마련돼 있어 다양한 관객층에 인기를 끌고 있다. 관람료는 무료.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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