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들뜬 분위기이고, 정부·여당은 환영일색이지만국민은 착잡함과 불안감이 앞선다. 긴장 완화를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단절부터 복원까지 과정을 보면 외교·안보정책이 이래도 되는 것인지 심각한 회의감이 든다. 통신단절 이후 북한은 우리 세금 179억원이 들어간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기습 폭파했다. 실세 김여정이 주도하고 김정은이 승인했음이 분명한 만행인데도 사과 한마디 없다. 실종 공무원 사살 후 시신훼손, 탄도미사일 발사 등의 무수한 도발도 뒤따랐다.
그래 놓고 북은 통신선 연결을 겨레의 화해를 도모하기 위한 지도자의 용단이자 선처인 양 목에 힘주고 있다. 사과도 없었는데 정부는 북의 행보에 감읍하고 포용정책의 결과물인 듯 뿌듯해한다. 북의 당당한 모습에서 통신선 복원에 정부가 얼마나 애걸복걸했을지, 앞으로 일어날 기막힌 일들이 눈에 선하다. 남북관계 개선 기대보다 정권 말 한탕주의 발동에 대한 우려가 앞설 수밖에 없다.
‘중대 발표’라며 통신선 복구소식을 긴급브리핑한 청와대는 “신뢰를 회복하고 관계를 다시 진전시키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고도 했다. 북한도 이례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긍정적인 작용을 하게 될 것’이라는 조선중앙통신 논평을 냈다. 다양한 깜짝 이벤트를 예고하는 듯하다. 통일부는 갖은 미사여구로 연락사무소 복원에 세금을 넣을 것이고, 유엔 제재를 피해가는 금강산 관광 편법재개나 개성공단 재가동도 테이블에 올릴 것이다.
내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정상회담을 시도할 것이란 관측이 벌써부터 나온다. 야당은 “대선을 앞두고 또다시 남북관계를 정치에 이용하려는 쇼”라고 비판하고 있어 남남갈등도 커지고 있다. 미국과의 조율이 있었겠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실질적 비핵화 조치 없이 제재완화는 없다’는 원칙을 수차례 천명한 점을 기억해야 한다. 유럽연합(EU)도 ‘도발 후 보상 금지’라는 원칙을 공유하고 있다. 임기 말 무리수 방북과 퍼주기 합의로 남북관계를 비정상으로 몰고간 노무현 정부 때와 같은 시도는 더 이상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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