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로를 만드는 필립모리스가 170년 이어온 연초담배 생산을 향후 10년 안에 중단하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대신 건강사업에 집중하고, 전자담배(아이코스) 투자도 늘리겠다는 것이다. 자동차 회사들이 내연기관차를 안 만들고 이젠 전기차만 생산하겠다는 것과 같다.
세계적으로 흡연율이 떨어지고 각국 정부의 담배 규제는 강화일로여서 이대론 미래가 없다고 봤을 것 같다. 2000년 66.3%였던 한국 성인남성 흡연율도 작년 36.6%까지 낮아졌다. 하지만 전자담배 시장이 남았다고 해도 과연 ‘담배 끊는 담배회사’가 가능할까 싶다.
산업 전반에 ‘업(業)의 본질’을 재정립하는 기업들의 혁신 바람이 담배산업에도 미친 결과다. 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은 자신들의 미션(임무)을 ‘이동서비스’로 보고 모빌리티 서비스 회사로 탈바꿈하고 있다. 컴퓨터 제조에서 IT서비스 기업으로 부활한 IBM, 제조업체에서 디지털 기업으로 변신한 GE도 ‘모든 비즈니스는 위대한 미션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피터 드러커의 말을 실천했다. 포스코도 이젠 철강회사가 아니라 ‘소재회사’라고 강조하는 시대다.
하지만 너무 앞서가도 탈이다. 영국 석유회사 BP는 2010년 멕시코만 석유시추선 폭발과 기름유출 사고를 겪은 뒤 근본적 해법이라며 ‘석유시대를 넘어’란 미션을 내걸었다. 문제는 ‘석유를 넘어선 석유회사’라는 어려운 과제를 제대로 진척시키지 못했다. 이에 비해, 경쟁사인 미국 셰브런은 믿을 수 있고, 경제적 감당이 가능한 청정에너지를 추구한다며 ‘휴먼 에너지 기업’을 미션으로 삼았다. 실행가능성 높은 미션이다.
헬스케어 기업이 되겠다는 필립모리스의 꿈이 과연 IBM이나 GE의 길을 걸을지, BP로 갈지 두고 볼 일이다. 기존 시장을 포기 못 해 혁신에 실패하는 ‘혁신기업의 딜레마’는 벗어났으나, 그다음 장정은 낙관할 수 없다. 그래서일까, 이런저런 해석보다는 그냥 ‘전자담배 광고하는 거잖아’란 반응이 더 눈길을 끈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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