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진의 논점과 관점] 신뢰사회와 그 적들

입력 2021-07-27 17:40   수정 2021-07-28 00:08

2년 전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 사위가 여당 국회의원이 운영하는 항공사 계열사에 취직했었다는 기사를 네이버 등 포털에 내보냈다. 600여 개의 댓글이 붙었다. 초반엔 그 사실을 밝혀낸 야당 의원을 응원하는 댓글들이 상단에 노출됐다. 공감 버튼을 많이 받아서다. 그러나 한 시간 반 뒤 상황이 반전했다. 야당 의원을 비난하는 댓글들이 상위로 치고 올라왔다. 특이한 점은 상위 노출 댓글들의 공감과 비공감 수 차이가 320개로 일정하게 맞춰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 조작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해 9월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조국의 법무부 장관 임명 여부를 놓고 찬반을 묻는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초반엔 ‘반대한다’는 응답이 우세했다. 그러나 하룻밤 새 40만 개 이상의 찬성표가 쏟아져 들어오며 결과가 뒤집혔다. 평소 5000~1만 명 정도가 참여하는 여론조사였다.
드루킹류 댓글 조작 횡행
다 지난 일을 소환한 이유는 인터넷 여론 조작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상기하기 위해서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2017년 대선 당시 ‘드루킹(본명 김동원)’ 일당과 공모해 인터넷 댓글을 조작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2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그러나 댓글 조작은 드루킹 이전에도, 이후에도 변함없이 횡행하고 있다. 앞서 2012년엔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이 있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 캠프에서 인터넷팀이 댓글 관리를 하고 있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정치권뿐만 아니다. 민간에서는 블로그 후기 조작, 악성 댓글 밀어내기, 경쟁사 비방글 작성 등을 해주는 ‘리뷰 서비스’가 성행이다. 댓글 건당 시장가격이 형성돼 있을 정도라니 얼마나 수요와 공급이 많은지 짐작할 만하다.

댓글 조작이 무서운 것은 여론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사회과학자엘리자베스 노엘레 노이만은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이 사회적으로 우세하고 다수 의견에 속하면 자신 있게 목소리를 낸다”고 말했다. 현대인들은 다수 의견을 인터넷 포털 뉴스와 댓글을 통해 확인한다. 정치인뿐 아니라 기업인, 자영업자까지 기를 쓰고 ‘댓글 분식’에 나서는 이유다. 이렇게 왜곡된 여론은 잘못된 선택과 정책 판단으로 이어져 헤아릴 수 없는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오게 된다.
통계분식은 전체주의 지름길
제대로 된 정치인이나 정권이라면 이런 세태를 비판하고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행태는 정반대다. 김경수는 수감 직전까지 “진실이 외면당했다” “진실은 언젠가는 되돌아올 것”이라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다. 댓글 조작을 사과하기는커녕 사법부 최종 판단까지 부인한 것이다.

이런 행태를 꾸짖어야 할 청와대도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 그 이유가 정권의 정통성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청와대 자신이 입맛에 맞게 통계청장과 통계 방식을 바꾸고, 원전 경제성 평가까지 조작한 ‘통계 분식’의 장본인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터다. 누가 누굴 탓할 처지가 아니란 얘기다.

카를 포퍼는 저서 《열린사회와 그 적들》 서문에서 “우리는 금수(禽獸)로 돌아갈 수 있다. 인간으로 남고자 한다면 오직 하나의 길, 열린 사회로의 길이 있을 뿐”이라고 썼다. 대통령에게 아직 나라다운 나라에 대한 염원이 남아 있다면 똑같은 얘길 해주고 싶다. 대한민국이 신뢰 사회, 민주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하겠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다”는 취임사 약속 정도는 지켜야 한다고. 덮고 가리고 거짓말하는 것은 포퍼가 가장 경계한 히틀러식 전체주의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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