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간 통신연락선이 지난해 6월 북한에 의해 차단된 지 413일 만에 복구되면서 장기간 경색됐던 남북 관계가 새로운 국면 전환의 계기를 맞았다. 남북 연락채널 복구를 통해 북한이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 제재 완화를 얻어내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가속화되는 한·미·일 3각 공조에 대한 견제 심리도 담겼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한 한마디 사과도 없이 통신선이 복구되면서 남북 관계가 북한 의지에 따라 일방적으로 끌려가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남북은 매일 오전 9시와 오후 5시에 정기적으로 통화하는 방식으로 통신선을 유지하기로 했다. 서해지구의 남북 군 통신선도 이날 개통돼 매일 두 차례 정기적으로 통화할 계획이다.
남북은 지난 4월 이후 정상 간 친서 교환을 통해 통신선 복구를 논의해왔다. 정상 간 친서 외에 남북 간 막후 소통도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남북이 이날 동시에 내놓은 발표문은 남북관계 회복, 개선, 신뢰, 발전 등의 표현을 공통으로 사용하는 등 문구가 상당히 흡사했다는 점에서 통신선 복구 발표까지 수차례에 걸친 물밑 조율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분석에 힘이 실렸다.
오랜 사전 조율 끝에 남북은 통신선 복구에 합의했지만 남북 통신선 단절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한 북측의 유감 표명은 없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해 6월 9일 대북전단 살포를 맹비난하며 남북 통신선을 차단한 데 이어 같은 달 16일에는 남측이 180억원을 투입해 건립한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북측의 유감 표명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연락선 복원은 남북 양 정상이 지난 4월부터 친서를 교환하면서 합의한 사항”이라며 “남북 간 현안과 쌓여 있는 문제에 대해 앞으로 논의해 나갈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북측의 유감 표명이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북한은 지난해 6월 통신선을 차단하며 남북 관계를 ‘대적 관계’로 규정했지만 외교적으로 고립돼 다시 남북 대화 재개에 응했다. 북한은 미·북 대화에 앞서 대북 제재 완화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조건없는 대화’를 강조하고 있다. 한국 정부·여당 일각에서도 대북제재 유연화 주장이 나온 가운데 미국에 제재 완화를 설득하기 용이한 환경 조성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이 가운데 다음달로 예정된 한·미 연합군사훈련은 남북 대화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 북한은 줄곧 연합훈련에 반대해왔는데 연락채널 복구를 명분으로 훈련 축소를 압박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한·미가 연합훈련을 하면 그에 대한 반발로 기존에 있던 남북 간 통신선을 끊던 것이 그동안 북한의 행태였는데 이번엔 연합훈련 중단이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역으로 복원했다”며 “다음달 연합훈련 실시 이후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남북 관계 개선에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통신선 복구는 연합훈련 축소의 명분을 축적하기 위한 것”이라며 “미국도 한국의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훈련 축소에 동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남북 관계 개선 여부는 오는 9월 이후에나 윤곽이 잡힐 전망이다. 청와대는 이날 선을 그었지만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등을 계기로 남북 정상회담 개최 등을 추진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신 센터장은 “다음달에는 연합훈련도 있기 때문에 대화 가능성은 9월 이후에 열려 있다”며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말에 베이징 같은 데서 남북 정상회담을 고려하고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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