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정말 IT강국 맞나

입력 2021-07-28 17:26   수정 2021-07-29 00:16

최근 국민들이 코로나 백신 접종 예약을 하는 과정에서 큰 불편을 겪었다. 정부 예약 시스템이 먹통이 되거나 수십 분 기다렸는데 초기 화면으로 되돌아가는 ‘튕김’ 현상까지 발생했다. 먹통 사태는 네 번이나 반복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했듯 ‘정보기술(IT) 강국인 한국의 위상에 걸맞지 않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국민의 분노가 커지고 대통령까지 질책하자 정부는 부랴부랴 LG CNS, 네이버, 카카오, 베스핀글로벌 등 전문 기업에 SOS를 쳤다. 지난해 원격수업 장애 때 LG CNS가 해결사로 나선 것과 비슷하다. 2000만 명에 달하는 40대 이하 접종 예약을 앞두고 근원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결국 클라우드 기술을 적용해 시스템을 보완하기로 했다.
공공서비스 최우선 순위는 국민
이번 사태의 직접적 원인은 용량을 넘어선 접속 폭주다. 수용 인원이 최대 30만 명인 시스템으로 수백만 명의 예약을 받을 때 이미 예견된 결과였다. 대상자와 자녀·대리인 등 수백만 명이 PC·스마트폰으로 동시 접속하자 시스템이 견디질 못했다. 일정이 촉박한데도 연령대를 더 세분화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기술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시스템 구축을 맡겨 문제가 발생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대기업이라고 해서 만능 해결사는 아니다. 다만 기술력, 시스템 구축 경험, 운영 인력, 문제 발생 시 대처 능력 등에서 대기업이 우위에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소프트웨어(SW)진흥법이 도마에 오른 건 너무 당연하다. 2013년부터 시행된 이 법은 공공SW 사업에 대기업의 참여를 제한한다. 공공시장에서 대기업 쏠림 현상을 막고 중소·중견기업에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였다.

대기업 참여를 제한해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졌을까. 법 시행 후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사례도 나타났다. 하지만 공공사업의 마진이 낮다 보니 수익성 악화를 겪고 있다. 대기업들은 국내 사업 이력이 없어 해외 수주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국가 안보, 신기술 적용 분야 등 일부 예외 사업에 대기업이 참여할 수 있지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심사는 깐깐하기만 하다. 교육부는 지난해 차세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구축 사업에 대기업 참여를 허용해 달라고 과기부에 요청했지만 네 차례나 퇴짜를 맞았다.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교육부의 노력이 규제 앞에 물거품이 됐다.
경쟁 저해하는 SW진흥법
공공 행정서비스는 국민 세금으로 이뤄진다. 정부는 국민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민간 영역에선 기업들이 소비자에게 최고 서비스·제품을 제공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연구개발에 힘을 쏟는다. 하지만 공공 영역에서는 기대하기 힘들다. 애초부터 칸막이를 세워 대기업을 배제하고, 경쟁 기회조차 박탈하기 때문이다. 더 나은 서비스를 받을 국민의 권리를 정부가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백신 접종 예약이나 온라인 교육처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중요 서비스에 대해선 대기업에도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 법령을 기계적으로 적용하기보다는 기술력과 경험 등을 종합 평가해 국민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시장·기술 변화에 맞춰 SW진흥법의 수술도 고민해야 할 때다. 중소기업을 육성하려면 제대로 된 지원책을 마련해 정공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시장을 재단해 중소기업에 나눠주는 식의 정책으로는 대·중소기업 간 갈등만 키우고 산업 성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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