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해질 무렵, 불볕 더위가 한풀 꺾이자 도쿄 오다이바와 아리아케를 잇는 보행자 전용 다리 유메노오하시(夢の大橋·'꿈의 대교'라는 뜻)에 수백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가족 단위의 시민들이 많았다. 모두들 오렌지색으로 타오르는 불꽃 앞에서 기념촬영에 열심이었다.
시민들 주위에는 '성화대 관람을 자제해주세요'라는 팻말을 든 자원봉사자들의 움직임이 분주했다. 자원봉사자들은 사진을 찍느라 포즈를 취하는 시민들을 찾아다니며 "멈추지 말고 계속 이동해 주세요!"라고 호소했다.
주경기장의 성화보다 크기만 3분의 1로 작을 뿐 디자인과 소재 모두 완전히 똑같다.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수소연료를 사용하는 점도 마찬가지다.
개막식이 끝난 직후인 24일 0시40분 주경기장의 성화대에서 채화한 성화로 이곳 제2성화대에 불을 붙였다. 2016년 리우올림픽 배드민턴 금메달리스트 다카하시 아야카 선수가 성화봉송 주자로 나섰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12시가 넘은 심야에도 100명 가까운 인파가 몰렸다.
자원봉사자들에게 떠밀려 제대로 감상을 할 수 없는데도 유메노하시 성화대에 시민이 몰리는 이유는 도쿄에서 거의 유일하게 올림픽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경기 대부분이 무관중으로 치러지는 탓에 TV에서는 온종일 경기중계가 이어지지만 정작 현실 공간에서는 올림픽의 열기를 감지하기 어렵다.
일반 시민들의 접근이 차단된 주경기장의 성화와 달리 유메노오하시의 성화는 일반 시민들이 직접 볼 수 있다. 보통의 일본인들에게는 국립경기장보다 이곳이 올림픽 주경기장인 셈이다. 가족과 함께 성화대를 찾은 50대 회사원 남성은 "TV로 보는 개막식으로는 뭔가 부족했다"며 "도쿄에서 올림픽이 열린다는 걸 실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유메노오하시가 일반 시민들의 주경기장이 된 이유는 또 있다. 아리아케와 오다이바 등 도쿄 해변지역은 도쿄올림픽 종목별 경기장이 집중돼 있다. 배구, 체조, 테니스, 스케이드보드, 트라이애슬론, 스포츠클라이밍 등 13경기가 일대에서 펼쳐진다.
3대3 농구와 같이 야외에서 열리는 경기는 멀게나마 선수들이 뛰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주변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대관람차도 뜻밖의 특수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무관객 개최가 결정되고 코로나19 긴급사태가 선포되면서 이 지역은 인파가 몰리는 것을 막아야 되는 경계구역이 됐다. 성화대 주변을 펜스로 둘러치고 자원봉사자들을 배치해 '관람 자제'를 호소하는 이유다.
최근 만난 일본인 음식점 주인은 "막대한 세금을 들여 일본에서 개최하는 이번 올림픽이 마치 차원이 다른 세계에서 열리는 이벤트같다"고 말했다. 실제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잔치집 분위기를 즐기는 대신 음식점 영업제한, 술집 휴업, 도심 고속도로 일부 구간 폐쇄 및 기본요금 1000엔(약 1만509원) 인상 등 희생만 요구받고 있다.
폭발적인 코로나19 확산세도 올림픽이 끝나면 일반 시민들이 감당할 몫이다. 이날 일본에서는 9583명의 코로나19 감염자가 확인됐다. 지난 1월8일의 7958명을 훌쩍 뛰어넘는 최고치다. 도쿄에서도 3177명의 확진자가 나와 처음 3000명을 넘었다.
최근 일본의 인터넷에서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반응은 '누구를 위한 올림픽인가'이다. 관람자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성화대를 보기 위해 끊임없이 몰려드는 유메노오하시의 인파를 보니 일본인들의 불만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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