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찾은 경기 시화국가산업단지의 한 볼트 제조업체. 이 업체 사장은 지난달부터 주 52시간 근로제가 적용되면서 생긴 인력 공백을 메울 방법이 없어 애타는 모습이었다. 그는 “외국인 근로자도 구할 수 없어 이대로라면 생산량을 줄여야 할 형편”이라며 “불법인 걸 알지만 직원에게 연장 근로를 부탁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50인 미만 사업장의 주 52시간제 시행 한 달째인 이날 시화산단에서 만난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산업단지의 활기가 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근로자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오후 6시께 산업단지는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인근 식당 주인은 “저녁 손님이 3분의 1로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한 열처리업체 사장은 “2교대 체계를 3교대로 바꿔야 하는데 인력 충원이 없는 현실에선 불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법정 근로시간은 4분의 3으로 줄었지만, 장비 예열 등 공정에 필요한 준비시간까지 고려하면 실제 생산량은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반월국가산업단지의 한 섬유업체 대표는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미국·유럽에서 원단 수요가 줄었다가 올해 회복세여서 직원 모집 공고를 냈는데 넉 달째 지원자가 없다”며 발을 굴렀다.
금형·표면처리·용접 등 ‘뿌리산업’ 종사 기업이 받는 충격도 크다. 금형산업의 경우 최소 3년은 꾸준히 종사하며 훈련해야 현업에서 제 몫을 할 수 있는데, 갈수록 장기 근속하려는 인원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신용문 금형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금형 숙련공이 될 때까지 수년간 시행착오를 겪으며 노력해야 하는데 젊은 기술자들이 편한 일을 찾아 금방 퇴사한다”며 “현장에 50~60대 기술자만 남은 상태여서 몇 년 후 국내 뿌리산업에 큰 공백이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소기업은 코로나19로 외국인 근로자 입국마저 끊긴 상황에서 계도기간 없이 주 52시간제가 시행돼 진퇴양난에 빠진 상태다. 올해 정부가 기업 수요를 추정해 받아들이기로 한 외국인 근로자는 2만8966명이었지만, 정식으로 입국한 외국인은 2855명(6월 말 기준)에 불과했다. 충남의 한 분체도장업체 사장은 “법인 한 곳당 합법적으로 외국인 인력을 받을 수 있는 정원이 정해져 있어 회사를 둘로 분리했다”며 “편법인 줄 알지만 생산 물량을 확보하려면 한 명의 외국인도 아쉬운 형편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벤처·스타트업계도 “(주 52시간제가)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며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초기 스타트업 직원의 상당수가 스톡옵션이나 지분을 보유한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초과 근무를 하는데, 주 52시간제로 성장동력이 꺼지게 됐다는 설명이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성과를 측정하고 보상하는 방법은 산업혁명 시대에나 적합한 제도”라며 “일과 자기계발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많은 스타트업은 법 적용을 보다 유연하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시화·반월=민경진/김동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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