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국유기업 등에 X레이 장비 등 수백 가지 품목을 조달할 때 자국산 부품을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한 제품을 구매하라는 지침을 최근 비밀리에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미·중 무역합의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로이터통신이 미국 내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재무부와 공업정보화부가 지난 5월 '수입품 정부 조달에 대한 감사 지침'이라는 문건을 국유기업과 병원, 공공기관 등에 하달했다고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지침은 의료기기, 진단 기계, 광학 장비 등 315개 품목에서 중국산 부품 비율을 25~100%로 맞춘 제품을 사도록 했다.
지침을 입수한 미국 정부의 전 관료는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할 때 이런 식의 내부 문건을 운용하지 않기로 했었다고 지적했다. 2020년 1월 이뤄진 미·중 1단계 무역합의에도 위배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 지침은 중국에 수출하는 기업들에 새로운 무역 장벽을 설정하는 것으로, 중국이 미국과의 1단계 무역합의에 따라 추가 구매를 약속한 의료 장비도 포함됐다. 자기공명영상(MRI)장비는 미국의 주요 수출품인데, 이번 지침에는 100% 중국산 부품으로 구성된 제품을 구매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같은 중국의 국산품 조달 지침은 조 바이든 미국 정부의 '바이 아메리칸' 품목 증가 계획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게 미국 무역 전문가들의 견해다. 중국의 지침은 바이 아메리칸처럼 공개적으로 발표되지 않은 데다, 중국은 국유 종합병원까지 포함시켜 대상 품목이 훨씬 광범위하다는 지적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 첫 주 미국 제조업 활성화에 연방정부의 막강한 구매력을 활용하기 위한 '바이 아메리칸'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지난주에는 정부가 조달하는 제품의 국산화 수준과 관련한 새로운 규정도 공개했다.
지난해 중국의 대미 수입액은 1250억달러(약 143조원)로, 구매처는 주로 중국의 교육, 의료, 교통, 농업 및 에너지 분야 대형 국유기업들이었다. 신용평가사 피치의 자회사인 피치솔루션에 따르면 존슨앤드존슨(J&J), 제너럴일렉트릭(GE) 등 미국 회사의 의료장비 수출액은 2018년 475억달러였고, 이 가운데 45억달러어치가 중국으로 수출됐다. 중국의 대미 의료장비 수입은 2018~2019년 미중 무역분쟁 기간 감소했고, 1단계 무역합의가 타결되면서 다시 증가하는 추세였다.
중국 내 미국 기업을 대표하는 미중비즈니스위원회의 더그 배리 대변인은 "그 문서를 보진 못했지만 관련 내용은 파악하고 있다"면서 "회원사들이 입찰과 관련 문제들을 보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중비즈니스위원회는 조 바이든 대통령 오는 10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중국의 무역장벽 관련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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