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前 다짐 지킨 박현주…해외법인 순이익도 매년 두 배 뛰어

입력 2021-08-05 17:34   수정 2021-08-12 17:01


2016년 금융위원회는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 방안을 발표했다.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키우겠다. 중장기적으로 자기자본 10조원 이상의 IB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자기자본이 10조원(약 100억달러) 정도는 있어야 글로벌 시장에서 쟁쟁한 해외 IB들과 경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시장에 과감히 투자하기 위한 기준점인 셈이다.


미래에셋증권이 국내 증권사 가운데 처음으로 자기자본 10조원을 넘기며 글로벌 IB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은 2015년 12월 미래에셋증권이 대우증권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후 “2020년까지 합병 증권사 자기자본을 10조원으로 각각 늘리겠다”고 밝혔다. 1년 늦었지만 그 목표를 달성한 셈이다.
해외 투자 ‘큰손’으로
박현주 회장은 오래전부터 해외시장에 공을 들였다. 현지 리서치센터 설립, 미국 상장지수펀드(ETF)운용사 글로벌X 인수, 해외 대체투자 등을 통해 한국 이외의 지역에서 매출을 늘리는 데 집중했다.

그 결과는 올해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미래에셋증권은 올 상반기 순이익의 20%를 해외에서 벌어들였다. 미래에셋증권 해외법인의 순이익은 2017년 348억원에 불과했지만 2018년 845억원, 2019년 1709억원으로 매년 두 배 이상씩 증가했다. 해외법인 순이익이 1000억원을 넘은 증권사는 미래에셋이 처음이었다. 작년에는 해외법인 순이익이 2010억원을 기록해 업계 최초로 2000억원을 돌파했다. 올 상반기에는 벌써 1800억원을 해외에서 벌었다. 해외법인 순이익이 올 연말에는 3000억원을 넘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해외 스타트업에도 선제적으로 투자했다. 2018년 중국 차량 공유업체 디디추싱에 2억680만달러를 투자한 게 대표적이다. 디디추싱은 지난 6월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다. ‘동남아시아의 우버’라 불리는 차량 공유업체 그랩에도 네이버와 손잡고 1억5000만달러를 투자했다. 그랩 역시 나스닥 상장을 준비 중이다. 업계에서는 미래에셋증권이 그랩 상장으로 투자액 대비 세 배 이상의 차익을 거둘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박 회장은 평소 “국내 자산시장은 너무 좁아 투자하기에 한계가 있다. 국내 투자자를 위해서라도 좋은 해외자산을 발굴해야 한다”며 해외사업을 밀어붙였다. 그는 “2025년까지 미래에셋증권을 글로벌 톱티어(top tier) IB로 만들겠다”는 목표도 밝혔다. 이 같은 글로벌 IB로 성장한다는 전략에서 10조원의 자기자본은 든든한 기반이 될 것으로 미래에셋은 보고 있다. 10조원이 글로벌 IB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한 것도 박 회장이다. 그는 “100억달러 정도 자본이 있어야 충분히 투자할 수 있고, 해외 파트너들도 미래에셋증권을 함께할 수 있는 회사로 인식할 것”이라고 말했다.
IMA 사업도 노려
자기자본 10조원은 미래에셋증권의 신사업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래에셋은 국내에서도 신사업을 시작했거나 준비 중이다. 지난 6월부터 3000억원어치의 발행어음을 내놓은 게 대표적이다.

발행어음은 증권사의 자체 신용을 바탕으로 발행하는 만기 1년 이내의 금융상품이다. 일반적인 기업어음(CP)보다는 수익률이 낮지만, 발행사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 자기자본의 두 배까지 발행할 수 있어 미래에셋증권은 20조원까지 발행어음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종합금융투자계좌(IMA)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IMA는 증권사가 원금보장 의무를 지고 고객의 예탁금을 운용해 수익을 내는 통합계좌다. 증권사로선 예탁금을 통합해 운용하며 기업금융 등에 쓸 수 있어 자기자본 이상으로 투자 규모를 키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기업 대출, 어음 할인 및 매입, 증권 및 회사채 매입 등에 예탁금을 쓸 수 있다. 벤처기업이나 혁신 중소기업에 자본을 공급하고 수수료를 받는 새로운 수익원이 생기는 셈이다.

IMA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자본이 8조원 이상이고, 발행어음업 인가가 있어야 한다.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증권사는 미래에셋증권이 유일하다.

금융당국은 아직까지 IMA 사업을 시작하기 위한 구체적 계획을 내놓지 않았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IMA 사업에 대한 계획이 나오면 언제든지 뛰어들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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