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있다고 보험 못 든다는 건 옛말"…유병자 보험 '봇물'

입력 2021-08-06 08:01   수정 2021-08-06 08:53


최근 국내 보험사들이 만성질환을 앓고 있거나 나이가 많은 유병자를 대상으로 한 간편보험 상품 출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보험 계약 심사 기준을 대폭 완화하거나 보장 범위를 상향 조정하는 등 가입자 유치에 발 벗고 나섰다.

저출산,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젊고 질병이 없는 고객층은 줄어드는 반면 '유병자 고객층'은 늘어난 영향이다. 과거엔 손해율을 높이는 상품으로 악명을 떨치기도 했으나, 적정 보험료를 산출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면서 유병자 보험시장은 업계의 새로운 먹거리가 됐다. 포화된 보험시장에서 확실한 수요층이 남아있는 블루오션인 만큼, 앞으로 '유병자 보험'이 보다 빠르게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만성질환자도 OK"…조건 낮추고, 보장은 넓히고 '경쟁 치열'
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화생명, 현대해상, 삼성화재 등 주요 보험사들이 유병자 대상 간편보험 상품을 연이어 출시하고 있다.

간편보험은 보험 가입 시 10개 이상의 조건을 통과해야 가입이 진행되는 일반보험 상품과 달리 2~3개의 최소화된 기준으로 보험 가입 여부를 심사하는 보험이다. 보험료가 일반보험 상품에 비해 높은 편인 대신 심사 조건이 까다롭다. 유병자나 고령층이 주로 가입하는 상품으로 알려져 있다.

한화생명은 이달 2일 유병자에게도 암·뇌·심장 3대 질병 수술비를 최대 8000만원까지 보장하는 '간편가입 누구나필요한 수술비종신보험'을 선보였다. 통상 유병자의 수술 보장 가입 한도가 1000만원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가입 한도를 대폭 올린 것이다. 또 원하는 수술을 직접 선택해 가입할 수 있도록 특약을 88종으로 세분화, 병력에 따른 맞춤 수술 보장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 보험은 최근 3개월 내 입원·수술·추가검사 필요 의사소견, 2년 내 질병이나 사고로 인한 입원·수술 여부, 5년 내 암·간경화증·만성신장질환 진단·입원·수술 여부 3가지 조건에만 해당하지 않으면 곧바로 가입할 수 있다.

현대해상도 입원 기간이 최근 3년간 5일 이내거나 수술 이력이 있어도 가입할 수 있는 '간편한원투333건강보험'을 지난달 출시했다. 기존 가입 심사 기준 가운데 '3년 내 입원·수술 여부' 항목을 '3년 내 6일 이상 입원·30일 이상 투약 여부'로 바꿨다. 80대까지 가입할 수 있고 최대 100세까지 보장하며, 해지환급금 미지급 조건 여부에 따라 보험료가 낮아져 고령층 수요가 높은 편이다.


NH농협생명은 지난 6월 유병자와 고령자 모두 두 가지 조건만 충족하면 가입할 수 있는 '두개만묻는NH건강보험'을 내놓았다. 간편보험의 경우 3대 질병에 대한 세 가지 원칙을 내세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상품은 가입 기준을 두 가지로 축소해 심사 과정을 간소화했다. '최근 3개월 내 의사의 입원·수술·추가검사 소견 여부'와 '5년 이내 암·간경화·협심증·심근경색·뇌졸중 진단·입원·수술 여부' 고지 항목만 통과하면 무리 없이 가입 가능하도록 했다.

삼성화재 역시 올해 가입 조건을 대폭 완화한 건강보험 '간편한 335-1유병장수'를 선보였다. 이 보험은 업계에서 유일하게 중대 질병 중 오직 암 진단 여부만 확인하는 게 특징. 구체적으로는 3개월 내 입원·수술·재검사 필요 소견 여부, 3년 내 입원·수술 여부, 5년 내 암 진단·입원·수술 여부만 가입 심사 조건으로 뒀다.

그렇다고 보장이 타 보험 대비 크게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암, 뇌출혈, 급성심근경색증의 3대 질병에 대한 진단비는 물론 표적항암약물허가치료비, 암 치료·2대 질병 통원 일당까지 보장한다. 암·뇌혈관질환·심장질환 관련 수술이나 입원 일당, 골절, 화상, 깁스 치료비 등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위험까지 보장 범위에 들어간다.
저출산·고령화에 유병자 시장 확대…'블루오션' 각광
국내 보험사들이 간편보험 시장 확보에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저출산,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된 탓에 만성질환자 또는 질병을 앓은 유병자를 대상으로 하는 보험시장 규모 자체가 커진 게 크다. 실제로 지난해 삼성생명·한화생명·교보생명의 유병자 보험 계약 건수는 52만1199건을 기록했다. 2019년(36만4514건) 대비 약 43% 증가한 수치다.

보험사 측에서도 유병자 보험시장은 나쁜 선택지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질병이 없는 경우보다 질환을 가진 경우 추후 병원을 방문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부담 완화 면에서 보험 가입 수요가 높아진다. 고비용 수술이 늘어가는 만성질환자의 경우 보험 필요성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보험사 입장에서도 적정 보험료를 산출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면서 유병자 시장은 새로운 먹거리로 떠올랐다. 금융감독원은 2015년부터 유병자 보험 활성화를 위해 보험개발원이 유병자 전용 보험료율을 보험사에 제공할 수 있도록 조치한 바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통계적인 어려움이 있었으나, 보험개발원의 유병자 전용 보험료율 체계를 시작으로 리스크 확률을 따질 수 있는 데이터가 쌓이면서 큰 손해를 보지 않고도 유병자 보험 상품을 운영할 수 있겠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고령화 및 인구 구조 변화를 막을 수 없는 만큼 발전 가능성이 큰 새로운 시장이라 본다"고 말했다.


앞으로 더 빠르게 유병자 보험 시장이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달 삼성생명·KB생명·한화생명·메리츠화재·삼성화재·KB손해보험 등 6개 보험사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공공의료데이터 이용을 위한 최종 승인을 획득한 점도 유병자 보험시장을 넓히는 데 직접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들 보험사는 고령자·유병자 전용 상품 개발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공공데이터를 활용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손해보험연구실장은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유병자 보험시장이 성장하는 추세는 해외에서도 이미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라며 "수명이 길어질수록 작고 큰 질병이 발생하고, 만성질환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잦은 만큼 유병자 보험시장 확대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진단했다.

정 실장은 "유병자 보험의 경우 질환의 속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상품을 세분화하고 보험료를 정확하게 산출할수록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 만족할 만한 결과를 창출할 수 있다"며 "최근 공공의료데이터 이용이 활성화되고 있는 점은 시장 확대 가능성을 더욱 높이는 요소"라고 말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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