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새 탄소배출량을 상쇄하기 위해 산림 투자에 뛰어드는 기업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미국에서 잇따라 발생한 대형 화재로 인해 산림 산업의 취약성을 드러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3일(현지시간) "미국 대형 산불이 탄소상쇄권의 희망을 잿더미로 만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탄소상쇄권(carbon offset)은 나무를 심거나 보호하는 사업에 투자해 탄소배출량을 상쇄하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탄소 다배출 기업이 탄소관리기업이나 삼림관리기업 등을 통해 수수료를 내면, 특정 숲의 탄소흡수량을 해당 기업 명의로 돌려 그만큼 기업의 탄소 배출량을 상쇄해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탄소상쇄권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몇년 사이에 자발적으로 삼림 투자에 나서는 기업들이 급증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유엔 기후행동특사를 역임한 마크 카니 전 영란은행 총재는 최근 블룸버그통신에 "2018년 3억달러(약 3429억원) 규모였던 이 시장은 2028년까지 1000억달러로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 투자은행 바클레이즈는 이처럼 자연에 대한 직접 투자 기회 규모가 총 3조600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정유사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은 2019년 탄소관리기업 피니트카폰에 500만달러를 투자한 데 이어 지난해 말에는 아예 피니트카본의 대주주로 올라섰다. 당시 정확한 인수가격은 밝히지 않았지만, 블룸버그통신은 "BP가 2030년까지 피니트카본에 10억달러가량을 더 투자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보도했다.
로열더치셸도 숲·습지 등 자연 기반 탄소 감축 분야에 향후 1~2년간 연간평균 1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지난해 8월엔 호주 농가 소유 토지를 용도변경해 감축권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하는 탄소관리기업 셀렉트카본을 인수했다.
인공지능(AI)으로 탄소포집 등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파차마는 최근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설립한 투자그룹인 브레이크스루 에너지 벤처스 등을 통해 1500만달러를 조달했다. 온라인 증권거래 플랫폼 로빈후드의 초기 투자자인 인덱스벤처스는 지난 5월 실베라에 대한 780만달러 펀딩을 주도했다. 실베라는 지리 공간 데이터, 위성 이미지 등을 사용해 숲의 탄소상쇄 체계를 분석하는 기업이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와 세일즈포스도 각각 자사의 기후혁신펀드, 타임벤처스를 통해 내추럴캐피털거래소(NCX)에 2000만달러를 투자했다. NCX는 원격 감지를 이용해 상쇄 효과를 낼 수 있는 삼림을 파악하는 기술을 보유한 회사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올해 초에는 탄소배출량 25만톤을 상쇄하기 위해 그린 다이아몬드 리소스 컴퍼니에 수수료를 지불했다. 금액은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 6월 미국의 대형 금융사 JP모간은 삼림관리업체 캠벨 글로벌을 인수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에서 연달아 발생한 대형 산불로 인해 산불, 가뭄, 질병에 취약한 산림 투자 산업의 단점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우려도 나온다. FT는 "이같은 재해가 지구 온난화로 인해 점점 더 악화되고 있는 영구적인 위협이라는 점에서 탄소상쇄권 시장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고 설명했다.
미 워싱턴주의 콜빌 지역 숲은 지난달 번개에 의한 대형 화재로 훼손됐는데, 이곳은 BP가 피니트카본을 통해 투자한 콜빌 임업 프로젝트가 이루어지던 곳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사정도 마찬가지다. 미 오리건주 클라마스 폭포 인근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MS가 그린 다이아몬드 리소스 컴퍼니를 통해 투자한 클라마스 이스트 삼림 프로젝트가 타격을 입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엘리자베스 윌모트 탄소프로그램 매니저는 지난달 비영리단체 카본180이 주최한 행사에서 "이번 재난이 향후 상쇄 효과에 어떤 타격을 미칠지 계산하고 있다"면서 "이처럼 자연을 기반으로 한 탄소 저감 해결책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고 싶진 않지만, 어떤 위험요소들이 도사리고 있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분류해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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