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농림축산식품부와 우유업계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원유 L당 가격이 926원에서 947원으로 21원(2.3%) 인상됐다. 이번 가격 인상은 원유가격연동제에 따라 지난해 7월 결정됐지만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1년 유예됐다. 낙농가들이 통상 보름간 원유를 공급한 뒤 대금 정산을 하는 것을 감안하면 오는 15일께 인상된 가격이 처음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2018년 원유가격이 L당 4원 올랐을 때 서울우유는 제품값을 3.6% 올렸다. 남양유업과 매일유업은 규격을 900mL로 10% 줄이는 방식으로 간접적인 가격 인상을 실시했다. 올해는 인상 폭이 2018년의 다섯 배를 넘어 제품 가격이 더 큰 폭으로 인상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문제는 이 같은 가격 인상이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 원리와 무관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원유 가격은 정부가 도입한 원유가격연동제에 따라 정해진다. 이 제도에서는 물가상승률과 생산비 증가분만을 감안해 가격을 결정한다. 생산비가 늘면 자동으로 우유값이 오르는 구조다.
하지만 국산 우유 소비는 해마다 감소해 지난해에는 최근 10년 중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수요가 줄면 가격이 떨어져야 정상이지만 국내에선 가격 결정 과정에 수요 감소가 반영되지 않아 오히려 값이 오르는 시장 왜곡이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가 낙농가에 수요량 이상의 생산을 보장해주는 ‘쿼터제’도 운영하고 있어 공급이 줄지 않는 문제도 있다. 우유를 재료로 사용하는 제과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계란 가격이 작년보다 50% 넘게 오르며 가격 인상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우유값까지 뛸 경우 이른바 ‘밀크 인플레이션’이 본격화할 것이란 관측이다.
농식품부는 최근 물가 불안을 고려해 낙농업계에 원유가격 인상을 6개월간 유보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낙농가들은 지난해 이미 1년간 가격 인상을 유예했기 때문에 인상 철회가 힘들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 고위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느끼는 물가 불안이 심각한 상황”이라며 “원유 가격 인상이 결정된 지난해와는 사정이 또 다르기 때문에 농가들에 한번 더 협조를 요청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날 강원 고성 돼지농장에서 석 달 만에 다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하면서 돼지고기 가격이 상승 압박을 받을 가능성도 커졌다. 이번에 ASF가 발생한 농장은 돼지 2400마리를 사육하는 곳이다. 정부는 해당 농장의 돼지 전체를 살처분하고 경기·강원 지역의 돼지농장과 축산시설, 축산차량에 대해 이날 오전 6시부터 10일 오전 6시까지 48시간 일시 이동중지명령을 발령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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