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3홀의 악몽’이 세계 최고를 자부하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선수들을 덮쳤다. ‘대참사’가 일어난 곳은 월드골프챔피언십(WGC) 페덱스 세인트 주드 인비테이셔널(총상금 1050만달러) 최종 라운드가 열린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 인근 TPC 사우스 윈드(파70) 11번홀(파3). 선수들의 타수를 앗아간 것은 물론 우승자 이름까지 바꿔놨다.
김시우, 한 홀에서만 +10, 역대 최다타
문제의 11번홀은 이날 최종 라운드에서 선수들을 가장 괴롭힌 곳이다. PGA투어에 따르면 선수들은 평균 3.6타를 친 뒤에야 이 홀을 벗어났다.도쿄올림픽을 마치고 출전한 김시우는 이 홀에서 볼 5개를 연못에 빠뜨려 13타를 적어냈다. 미국 골프위크에 따르면 13타는 PGA투어(메이저대회 제외) 사상 파3 최다타 신기록이다. 이전 기록은 12타였다.
김시우는 티샷을 물에 빠뜨린 뒤 벌타를 받고 드롭존으로 이동했다. 96야드 지점에서 친 세 번째 샷도 연못으로 향했다. 다섯 번째 샷, 일곱 번째 샷, 아홉 번째 샷도 마찬가지였다. 11번째 샷은 간신히 올렸고, 이름도 생소한 데큐플 보기(decuple bogey)를 기록한 뒤에야 악몽에서 벗어났다. 이 홀을 제외하면 그는 버디 6개에 더블 보기 1개, 보기 2개를 묶어 준수한 경기를 했지만 8오버파 78타의 스코어카드를 제출했다.
우승 경쟁을 하던 해리스 잉글리시(32·미국)도 11번홀에서 발목이 잡혔다. 단독 선두로 출발한 잉글리시는 전반에 2타를 줄인 뒤 이 홀에 들어섰다. 티샷을 물에 빠뜨렸고 결국 더블 보기로 홀아웃했다. 그의 최종 스코어는 15언더파. 11번홀을 파로 마쳤다면 우승은 그의 차지였다.
‘괴물 장타자’ 브라이슨 디섐보(28·미국)도 11번홀의 희생자였다. 티샷을 물에 빠뜨렸고 세 번째 샷은 벙커에 빠졌다. 홀을 가운데 두고 왔다갔다한 그는 결국 트리플 보기를 적어냈다. 급격히 흔들린 그는 이후에도 2타를 더 잃고 우승 경쟁에서 밀려났다.
안세르, 멕시코에 첫 WGC 우승컵 선물
경기 뒤 잉글리시는 챔피언 조에서 함께 경기한 디섐보의 슬로 플레이를 탓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잉글리시는 “앞 팀과 간격이 너무 벌어져 거의 뛰어다녔다”고 말했다. 잉글리시는 디섐보의 이름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같은 조에서 경기한 디섐보의 경기 속도가 걸림돌이 됐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둘은 늑장 플레이로 경고를 받았다. 디섐보는 언론이 자신의 발언을 왜곡한다며 미디어와 인터뷰를 거부했다.‘쩐의 전쟁’에서 웃은 건 멕시코 골프의 간판 선수 아브라암 안세르(30·멕시코)였다. 지난 120개 대회에서 우승 없이 침묵한 그는 자신의 첫 우승컵을 세계랭킹 50위, 올해 투어 대회 우승자만 불러 치르는 특급 대회에서 들어올렸다. 우승상금은 182만달러(약 20억8000만원). 멕시코 선수가 WGC대회에서 우승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안세르는 4라운드에서 2언더파를 쳤고 최종합계 16언더파 264타를 기록해 샘 번스(25·미국), 마쓰야마 히데키(29·일본)와 3자 연장 승부에 들어갔다. 18번홀(파4)에서 열린 첫 번째 연장전에서 셋 모두 파를 적어냈다. 같은 홀에서 열린 두 번째 연장에서 안세르만 1.2m 버디 퍼트를 넣어 우승했다.
페덱스컵 포인트 랭킹에서 6위로 올라선 안세르는 세계랭킹도 지난주보다 12계단 오른 11위에 안착했다. 안세르는 “PGA투어 우승의 꿈이 실현됐다”며 기뻐했다.
마쓰야마는 지난주 도쿄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 이어 2주 연속 연장전에서 고배를 마셔 공동 2위를 기록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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