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간첩사건 침묵하는 청와대와 민주당

입력 2021-08-09 17:24   수정 2021-08-10 01:29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한다면 법대로 처리하면 된다.” 더불어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9일 이른바 ‘충북 간첩단 사건’에 대해 “다른 혐의도 있다는데 당에서 일일이 들여다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며 이렇게 말했다.

최근 북한이 ‘자주 통일 충북동지회’ 소속 활동가들에게 유튜브와 SNS 등을 통해 반(反)보수 활동을 펼칠 것을 지시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이들은 북한의 지령을 받아 미국 스텔스 전투기 국내 도입 반대 활동도 벌였다. 국가정보원이 확보한 USB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원수(元首)’라고 지칭하며 충성을 맹세한 ‘혈서’까지 담겨있다고 한다.

21세기 대한민국 땅에서 간첩이 버젓이 활동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어찌 된 일인지 여당은 조용하다. 불과 3일 전 민주당과 열린민주당 등 범여권 정당 소속 국회의원 74명이 한·미 연합군사훈련 연기를 촉구하는 연판장을 돌릴 때의 기세와는 사뭇 다르다. 이들 의원은 “남북한 관계와 한반도 정세의 결정적 전환을 가져오기 위한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인 조치로서 한·미 군사훈련의 연기를 결단할 필요가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 역시 마찬가지다. 송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충북 간첩단 사건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는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시절인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이들을 면담한 것으로 밝혀졌다.

청와대도 침묵하고 있다. 수사를 받는 활동가들은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 선거대책위원회 특보로 활동한 사실이 드러났다. 문 대통령 지지 회견까지 열었다. 청와대는 그러나 문 대통령의 해명을 요구하는 야당의 주장에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다.

‘한·미 연합훈련’과 ‘간첩단 사건’을 대하는 여당과 청와대의 태도를 지켜보면서 충북 간첩단의 행위가 문재인 정부에서 드러난 게 그나마 다행스럽다는 생각마저 든다. 많은 국민, 특히 반공주의 교육이 사라진 1990년대 후반 공교육을 받은 40대 이하 세대는 간첩이라고 하면 적대행위보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 ‘공안 몰이’를 먼저 떠올릴 테니 말이다. 보수 정부에서, 그것도 대통령 선거를 7개월 앞두고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지금의 민주당은 ‘공안 탄압’, ‘색깔론’, ‘북풍’과 같은 프레임을 덧씌우며 국민을 혼란스럽게 했을 수 있다.

좀처럼 믿기 힘든 데다 황당하기까지 한 이들의 간첩 행위가 북한 친화적인 민주당 정부에서 발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국민의힘은 “안보 붕괴와 안보 공백에 대한 해결책을 국민 앞에 소상히 설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강조해 온 ‘북한과의 평화’가 야당이 주장하는 ‘안보 공백’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면 마땅한 설명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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