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자동차 '마이너스옵션' 사태 불러온 5가지 이유[권영대의 모빌리티 히치하이킹]

입력 2021-08-09 20:29   수정 2021-08-09 20:30

≪이 기사는 07월16일(11:34)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얼마 전 기아자동차 K8 등 신형 자동차가 '마이너스 옵션'을 도입한다는 것이 차량 구매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마이너스 옵션이란 차량용 반도체가 부족해 차를 출고하는 시기가 늦어지니, 기본 편의 장비(소위 '옵션') 중 일부를 제외한 차량의 가격에서 편의 장비 가격을 제외하고 출고하는 방식이다. 자동차 회사들로서는 옵션이 큰 수익원이다. 좀 더 많은 옵션을 추가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되레 기본적인 옵션마저 빼고 팔겠다니, 대단히 이례적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자동차 회사라고 해서 돈 벌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 아깝지 않을 리 없다. 그런데도 마이너스 옵션 사태가 벌어진 이유는, 차를 일단 고객에게 내 줄 수 있어야 돈을 받을 터인데 차를 내주지 못할 정도로 반도체 부족 사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 반도체 못 구해 車 생산 줄줄이 멈춰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차량용 반도체를 구하지 못해 생산라인을 1주일 동안 멈췄다. 그나마 우리나라 상황은 다른 자동차 생산국가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다. 시장조사업체 LMC의 분석에 따르면 자동차 반도체 부족으로 미국은 최악의 경우 전체 생산계획의 10%를 감축 생산해야 한다. 또한 아시아권 국가인 중국과 인도도 각각 10%와 9% 수준의 생산량 감소가 예상된다.

이러한 반도체 부족 현상은 코로나19로 인한 단기적 원인도 있지만 자동차 부품 공급망의 구조적 문제에서도 기인한다. 모든 부족 현상은 수요-공급의 불균형에서 일어나는데 현재의 반도체 공급 부족 원인은 크게 5가지다.

◆ 수요는 늘고 공급은 못 따라가‥車 반도체 춘궁기 길어질 듯

① [초과 수요: 예상보다 증가한 차량 생산량] 대부분의 OEM은 코로나19 초기 큰 폭의 자동차 판매량 감소를 예상했고 이에 따라 부품 재고량도 축소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공유 차량에 대한 반발 작용과 전 세계적인 유동성 거품으로 인해 차량 판매는 예상보다 선전했고(2020년의 글로벌 판매량은 2019년 대비 14% 감소에 불과) 대부분의 OEM들이 코로나19 이후 수립한 보수적 계획을 상회해 판매했다.

② [초과 수요: 차량 1대에 소요되는 반도체 수의 급증] 편의 장비 확대, 반자율주행 기능 탑재의 증가로 차량 1대에 필요한 반도체의 수가 급증했다. 1960년대 처음으로 자동차에 반도체가 사용된 이후 현재 차량당 필요한 반도체는 200여 개지만, 향후 자율주행 레벨 3 이상 자동차에는 2,000개 이상의 반도체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③ [제한된 공급: 코로나19로 인한 반도체 공장 가동률 하락] 록다운(Lock-down)이 진행되는 많은 제조업에서 공급망 붕괴와 생산 인력 활용도 하락으로 가동률 저하 현상이 일어났다.

④ [제한된 공급: 무역 장벽으로 인한 반도체 수급 어려움]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으로 중국 최대 반도체 제조업체인 SMIC와 화웨이의 해외 공급망, TSMC의 중국 공급망 모두 영향을 받았다.

⑤ [제한된 공급: 차량용 반도체의 길고 복잡한 공급 사슬] 가전과 IT 기기의 경우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2~3단계를 통해 최종 고객에게 납품되는 반면, 차량용 반도체는 일반적으로 4단계를 통해 OEM에게 납품되는 길고 복잡한 공급 사슬(그림 1 참조)로 운영되고 있다. 이는 반도체 수요가 공급에 반영되는 시간을 지연시키는 효과를 발생시켰다.

위에서 설명한 5가지 이유 중에 1, 3은 코로나19로 인한 단기적 요인이나, 그 외 2, 4, 5는 코로나19가 종식되어도 지속할 요인이다. 따라서 차량용 반도체 부족은 공급망을 크게 강화하지 않으면 상당히 오랫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 Just In Time,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이런 예측에 기반해 각국은 차량용 반도체 확보를 위한 국가 차원의 과제를 계획하고 추진 중이다. 미국은 2020년 6월 ‘반도체 산업 지원 법안(Chips for America Act)’을 법제화해 미국 내 반도체 제조와 연구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으며, 유럽은 반도체 현지 생산 시설에 최대 150조 원(1,45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아시아권 국가도 마찬가지인데 중국은 2025년까지 반도체 수요의 70%를 자국 내에서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움직임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도 국가 차원의 대응 과제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정부가 내세울 수 있는 대안과, 개별 기업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서로 다르다. 완성차 제조업체(OEM)들이 스스로 고려할 만한 옵션들이 있다.

첫 번째는 현재까지의 반도체 소싱 구조를 변경해 직구매와 장기계약을 고려해야 한다. 폭스바겐의 경우 특정 반도체에 제한적이나 이미 직구매와 장기계약을 추진 중이다. 이 방안은 앞서 얘기한 4단계의 공급망 사슬을 단축하는 효과가 있다.

두 번째 방안은 재고 관리 규정의 변경이다. 지금까지 자동차회사들은 재고 최소화를 위해 적시 공급 체계(Just in time)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이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반도체에 한해서는 더 많은 안전 재고를 확보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일본은 이번 반도체 부족으로 인한 생산 감소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았는데 이는 도요타가 업계 최대 수준인 4개월 분량의 반도체 재고를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방안은 차량용 반도체 시설의 내재화(In-house)다. 이미 일부 자동차회사들이 조인트벤처(J/V) 또는 지분 투자 형태로 반도체 시설에 대해 투자를 계획하고 있으며, 이를 통한 전략적 공급망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자동차는 과거의 기계 부품 중심에서 벗어나 첨단 전자제품으로 변화하고 있다. 첨단 전자제품은 센싱→연산→제어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반도체는 필수 부품이다. 우리나라 자동차 및 반도체 업계가 적극적으로 대응해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을 안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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