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장 된 장례식장…유언장 숨겨도 소용없다 [더 머니이스트-정인국의 상속대전]

입력 2021-08-11 12:11   수정 2021-08-11 17:07


통수친 씨는 아내 도저희 씨와의 사이에 딸 하나 씨와 아들 두나 씨를 두고 있습니다. 통수친 씨는 6개월 전에 말기 췌장암을 선고받고 투병하다가 사망했습니다. 가족들이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을 받고 있는데, 딸 하나 씨와 비슷한 또래의 젊은 여성이 어린 남자애를 데리고 다가왔습니다. 해당 여성은 도저희 씨에게 오더니 아이한테 큰어머니에게 인사를 하라고 시켰고, 하나 씨와 두나 씨에게는 누나와 형이라고 했습니다. 도저희 씨는 충격을 받아 실신했고 장례식장은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하나 씨와 두나 씨는 장례식을 끝낸 후 집으로 돌아와 급히 아버지의 유품을 찾았습니다. 아버지가 쓰던 책상 서랍에 자필 유언장이 들어있었습니다. 유언장의 내용은 충격적입니다. 장례식장에 나타난 내연희라는 젊은 여자와의 사이에 세나라는 아들이 있다는 겁니다. 이어 100억원에 이르는 재산의 절반을 세나에게 물려준다는 내용입니다. 이미 가족관계등록부에는 통세나가 통수친 씨의 혼외자로 등재되어 있었구요.

며칠 뒤 내연희 씨는 아들 세나를 데리고 찾아와서 상속재산을 공평하게 나누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다행히 내연희 씨는 유언장의 존재를 모르는 눈치입니다. 도저희 씨 가족은 유언장의 존재를 숨기기로 했습니다. 저 꼬마애가 통수친 씨의 자식이라는 걸 믿을 수 없다며 상속재산분할을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내연희 씨는 아들을 대리해서 도저희 씨 가족을 상대로 상속재산분할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유언장, 숨기기만 해도 결격사유 발생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결국 유언장의 존재가 드러났습니다. 도저희 씨와 자녀들은 시치미를 뗐지만, 유언장 작성 당시 증인으로 참여했던 법무사가 증언해 유언장의 존재와 그 내용이 확인됐습니다. 도저희 씨 측에서 유언장을 숨긴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그러자 내연희 씨 측 변호사는 도저희 씨와 그 자녀들은 상속권이 박탈되었으므로 세나 혼자서 모든 재산을 상속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행동을 하면 상속권이 박탈됩니다. 민법상 상속결격사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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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4조(상속인의 결격사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한 자는 상속인이 되지 못한다.

1. 고의로 직계존속, 피상속인, 그 배우자 또는 상속의 선순위나 동순위에 있는 자를 살해하거나 살해하려한 자
2. 고의로 직계존속, 피상속인과 그 배우자에게 상해를 가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자
3. 사기 또는 강박으로 피상속인의 상속에 관한 유언 또는 유언의 철회를 방해한 자
4. 사기 또는 강박으로 피상속인의 상속에 관한 유언을 하게 한 자
5. 피상속인의 상속에 관한 유언서를 위조ㆍ변조ㆍ파기 또는 은닉한 자
여기서 5번과 관련해 상속인이 유언장을 찢어버릴 경우 상속결격이 됩니다. 이러한 사실은 일반인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은닉만 하더라도 상속결격에 해당한다는 점은 잘 모릅니다.

도저희 씨 측에서는 이제 승산이 낮은 싸움을 시작해야 합니다. 유언장의 존재를 숨긴 것에 대해 정당한 사유를 들어서 상속결격이 아니라는 주장을 해야 하겠지만, 재판부를 설득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법원이 도저희 씨 측에서 유언장을 은닉했다고 판단할 경우, 이에 관여한 도저희·통하나·통두나 모두 상속권이 박탈되는 것입니다.
상속결격자에게 자녀 있다면…그 자녀가 상속 가능해
다행이라면 통하나 씨에게 아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통세나에게는 조카가 됩니다. '대습상속'이라고 해서 상속인이 될 자가 결격이 된 경우에 직계비속이 있으면, 그 직계비속이 결격된 자의 순위에 갈음하여 상속인이 됩니다. 따라서 통하나가 상속결격이 되더라도 그 아들(통수친 씨의 손주)이 대신 상속을 받을 수 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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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1조(대습상속) 전조 제1항 제1호와 제3호의 규정에 의하여 상속인이 될 직계비속 또는 형제자매가 상속개시 전에 사망하거나 결격자가 된 경우에 그 직계비속이 있는 때에는 그 직계비속이 사망하거나 결격된 자의 순위에 갈음하여 상속인이 된다.
정리해보겠습니다. 통수친 씨가 남긴 100억원의 상속재산에 대해서 상속인은 통세나와 통하나 씨의 아들 이렇게 2명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상속결격으로 상속을 전혀 받지 못하게 된 도저희 씨와 통두나 씨가 통하나 씨 측에 상속재산의 분배를 요구할 경우, 이들 간에 새로운 분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정인국 한서법률사무소 변호사/세무사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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