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면허·신호위반 사고 낸 전동킥보드…법원 "업무상 재해"

입력 2021-08-11 14:00   수정 2021-08-11 14:08


근로자가 무면허로 전동킥보드를 타고 출근하던 중 신호까지 위반해 사고를 일으킨 경우에도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고 당시 전동 킥보드 관련 규정이 제대로 정비돼 있지 않았고, 근로자의 중과실이 있긴 했지만 사고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라는 이유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단독 박종환 판사는 지난달 7일 근로자 A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청구한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소송에서 이같이 판단하고 A의 손을 들어줬다.

A는 2019년 11월 경 무면허인 채로 전동킥보드를 타고 출근길에 나섰다. A는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보행신호 녹색등이 깜박이는 시점에 무리해서 진입했다가, 주행 신호를 받고 움직이던 화물트럭과 충돌하고야 말았다. 신호 위반에도 해당하지만,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내려야 한다는 도로교통법도 위반했다. 이 사고로 좌측 경골이 골절되는 등 부상을 입은 A는 지난해 1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하지만 공단은 "이 사고는 A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상 중과실(신호위반)을 저질러 발생한 사고"라며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해 요양급여 신청을 승인하지 않았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은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돼 발생한 부상은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다.

이에 A는 "사고는 트럭 운전자의 과실이 더해져서 발생했고, 오로지 A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돼 발생한 사고가 아니다"라며 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법원은 A의 손을 들어줬다. 박 판사는 "A에게 과실이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된다"면서도 "사고 당시 전동킥보드 이용자가 급증하는데 비해 이를 규제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미비했고, 이용자들도 통행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라고 지적했다. 신호 위반에 이해할만한 사정이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법을 위반하긴 했지만 산재보험 보호대상에서 배제돼야 할 정도로 위법하거나 비난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어렵다"며 "화물차 운전자도 녹색등 점멸 도중에 횡단하는 자전거나 전동 킥보드 운전자가 흔하므로 두루 살피면서 운전해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이를 바탕으로 "오로지 A의 중과실로 인한 범죄행위가 원인이 돼 사고가 발생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라고 판단해 근로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

공단은 뒤늦게 "A는 특례법상 무면허 운전"에 해당한다고도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동 킥보드도 도로교통법의 적용 대상인 원동기장치자전거에 해당하므로 면허가 있어야 운전할 수 있다.

법원은 뒤늦게 낸 '무면허 주장'을 재판 과정에서 추가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서도, 설사 무면허 운전이라 할지라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박 판사는 "원동기(오토바이) 무면허 운전에 대해 3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있지만 전동킥보다는 이보다 위험성이 낮고, 이를 감안해 검사도 A에게 무면허 운전혐의에 대해선 기소유예처분을 했다"며 "'범죄행위로 인한 부상'이란 범죄가 부상의 '직접 원인이 된 경우'만을 의미한다는 점을 보면 공단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판단해 A의 손을 들어줬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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