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1819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금본위제를 도입했다. 당시 금과 함께 화폐 기능을 하던 은의 가격이 상승하자 은화를 녹이는 사태가 발생했고 자연스럽게 금화가 통화시장에 남았다. 미국은 1900년부터 금본위제를 시행했다. 금을 보유한 만큼만 화폐를 발행해야 하는 금본위제가 세계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금본위제의 제1원칙은 경제 위기가 닥치면서 무너졌다. 1929년 사상 유례없는 대공황이 결정적 계기였다. 경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공격적인 통화정책이 필요했던 각국은 금 보유량으로 화폐 발행량을 제한하는 금본위제를 ‘족쇄’로 여기고 폐기하고 나섰다. ‘뉴딜정책’으로 유명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도 금본위제를 포기했다.
금본위제는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가 확립되며 부활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 세계 44개국이 미국 뉴햄프셔 브레턴우즈에 모여 달러를 금과 연동하는 금본위제를 공식화했다. 금 1트로이온스(약 31.1g)를 35달러로 고정하고 다른 국가의 통화는 고정환율로 달러에 묶었다. 이로써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고 초강대국이 된 미국은 달러를 앞세워 기축통화국이 됐다.
금본위제는 1971년 8월 15일 끝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베트남 전쟁이 원인이 됐다. 무려 15년간 이어진 전쟁 속에서 미국은 금 보유량을 넘어서는 막대한 달러를 찍어냈고, 달러 가치 하락을 우려한 유럽의 미 국채 보유국을 중심으로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그러자 리처드 닉슨 당시 미 대통령은 달러와 금의 교환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금본위제가 돌연 폐지된 뒤 물가상승률이 두 자릿수를 넘는 ‘닉슨 쇼크’가 터졌다. 달러 가치 하락 속에서 금 가격은 급등했다. 금이 인플레이션을 헤지할 수 있는 투자처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가치 변동성이 낮은 안전자산이란 믿음 속에 금은 포트폴리오의 핵심 구성 요소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금이 더 이상 매력적인 투자처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인용한 캠벨 하비 듀크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금본위제 폐지 후 금값이 급등한 초기 10년을 제외하면 금의 연평균 수익률은 3.6%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S&P500(연평균 12.2%)과 미 국채 수익률(연평균 8.2%)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비정상적인 가격 급등기를 빼면 금 투자 수익률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암호화폐의 등장도 금의 지위를 위협하는 변수다. WSJ는 “가상자산이 등장하며 예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경쟁에 직면했다”고 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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