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에 조금이라도 시원하게 지내기 위한 노력은 인류 역사상 꾸준히 이어졌다. 에어컨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그 발견의 공은 다른 이에게 돌아가겠지만, 현대식 에어컨을 최초로 개발한 사람으로는 주로 미국의 윌리스 캐리어가 꼽힌다.
코넬대 기계공학과를 나온 캐리어는 1901년 히터와 송풍기를 생산하는 버펄로 포지 컴퍼니에 입사했다. 버펄로 포지사(社)는 금속을 녹이는 데 쓰는 가마를 뜻하는 포지(forge)가 이름에 들어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1878년 제철 장비를 제작하는 회사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다소 얼떨결에 제철용 송풍기를 공장 실내 환풍기로 개조하면서 환풍기 사업에 뛰어들게 됐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환풍이 필요한 실내공간의 크기에 따라 설치해야 할 환풍기 역시 달라지는데, 당대의 많은 기술자가 다소 부정확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관행적으로 사용해온 계산표에 따라 환풍기를 설계하고 제작했다. 그렇다 보니 설치해 놓은 환풍기가 한 번에 제대로 동작하는 법이 없었고, 몇 차례 시행착오를 거치며 환풍기를 재설치하기 일쑤였다.
때마침 뉴욕 브루클린의 새켓-윌헬름즈 인쇄소가 등장한다. 이 회사는 당시 고품질 컬러 인쇄로 유명했는데, 한 가지 큰 고민이 있었다. 뉴욕은 여름이면 습도가 매우 높은데, 이로 인해 종이가 늘어났다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이는 한 번에 한 가지 색깔만 인쇄할 수 있는 당시의 컬러 인쇄 기술에 치명적이었다. 이미 한 가지 색깔을 인쇄해 놓은 종이가 다른 색깔을 인쇄하기 전에 살짝 늘어나거나 줄어들면 어떤 문제가 생길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1901년 여름은 특히 덥고 습해서, 어떤 날들은 인쇄기를 가동할 엄두조차 못 냈다고 한다. 그래서 1902년 여름이 오기 전 산업용 건조기술을 갖춘 버펄로 포지사에 습도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지 의뢰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할 담당자로 캐리어가 배정됐다.
그러고 보면 캐리어가 현대적 에어컨의 발명가로 꼽히는 이유는 그가 에어컨을 그 누구보다 앞서서 개발했기 때문은 아니다. 많은 최초 발명품이 그렇듯 울프의 에어컨이나 캐리어의 제습기는 모두 사람 손을 많이 타는 기계로 이를 운용할 전문 기술자가 필요했고, 사용하는 냉매 역시 유독성이 높은 암모니아였다. 캐리어는 자신의 발명품의 이런 단점들을 개선할 필요성을 그 누구보다 크게 느끼고 있었고, 실제로 수십 년에 걸쳐 많은 문제를 해결했다. 또한 제1차대전 발발로 경영난을 겪게 된 버펄로 포지사에서 에어컨 관련 사업부를 축소하려고 하자 6명의 동료와 독립해 캐리어엔지니어링 유한회사를 차릴 정도로 에어컨 개발에 본인의 커리어를 걸었다는 사실 역시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어떤 문제가 있으면 시대를 앞서가는 천재의 등장으로 그 문제가 해결됐다는 서사에 익숙하지만, 세상 그 어떤 문제도 누군가의 집요한 노력 없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지금부터 많은 이들의 지치지 않는 노력이 필요할 텐데, 그런 이들의 우직한 노력을 비웃지 않을 정도의 혜안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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